[문화와 산업]김지룡/게임산업 비결은 ‘환상속 대리만족’

  • 입력 2002년 9월 12일 17시 44분


21세기 대중문화산업의 중심은 게임산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게임산업은 영화산업의 규모를 능가하고 있다.

게임이 다른 대중문화 장르보다 뛰어난 점은 누구나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 게임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까지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간단한 조작 몇 번으로 누구나 중세의 기사나 마법사가 될 수 있고 우주에서 전투를 벌이는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경험한 것 같은 착각을 주느냐 여부는 게임 콘텐츠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그것을 위해 게임 개발업체는 ‘3D 그래픽’에 수십억원대의 자금을 투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별것 아닌 것으로 가상 현실을 만끽시키는 방법도 있다. 고스톱이나 바둑, 포커 같은 테이블 게임도 수많은 유저를 확보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1초에 대여섯 번 마우스를 누르는 마술 같은 손놀림 솜씨가 없는 사람도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 즉 ‘진입장벽’이 낮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커 게임에서 주고받는 ‘게임머니’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골드’ 같은 독자적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현실과 똑같이 ‘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터넷 포커 게임 사이트 중에서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게임 머니의 단위로 현실과 같은 ‘원’을 사용한다. 그런데 게임에서 주고받는 액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제일 낮은 레벨에서도 100만원대의 돈을 걸고 포커 게임을 한다. 높은 레벨에 이르면 조 단위의 돈을 걸게 된다. ‘1조’ ‘1조 받고 2조’ ‘2조 받고 4조’ 같은 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판돈의 액수가 크다는 바로 이 점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돈 만원에 쩔쩔매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게임의 세계에서는 몇 억원의 돈을 우습게 여기는 호쾌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전 재산이 걸린 판에서는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흥분한다.

게임을 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게임에 빠지면 게임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폐해가 있다고 하지만 위험한 선을 넘지 않는다면 게임을 현실처럼 생각할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 판에 일년 예산에 해당하는 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일. 현실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 포커 게임은 정말 별것 아닌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dragonkj@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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