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단체장 4기, 아직 부실한 뿌리]<5>大수도론 ‘뜨거운 감자’

  • 입력 200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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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의 미국계 반도체 제작업체 F사. 이 회사는 1998년 국내 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사들인 뒤 2억 달러(약 1920억 원)를 투자할 계획으로 사업을 해 왔다.

그러나 F사는 요즘 다른 나라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6개월 단위로 신제품을 선보여야 살아남는 시장 특성에 맞게 생산라인을 수시로 바꾸고 확장해야 하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에 막혀 이도 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신제품 생산라인을 설치하기 위해 가동 중인 기존의 생산라인을 철거해야만 했다.

대구경북연구원은 지난해 11월 “공장 신증설에 대한 수도권 규제가 풀릴 경우 대구 경북 지역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연구원은 “LG필립스의 파주 LCD공장 유치를 시작으로 대기업의 투자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수도권 공장 신증설에 따른 대구 경북 지역 전체의 피해는 LG그룹 3개 사(LG전자, LG마이크론, LG이노텍)의 향후 투자액 1조4000억 원을 포함해 3조9532억 원, 고용 감소는 1만8649명으로 예상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6일 “경기와 서울, 인천 등 수도권을 하나로 묶어 대(大)수도 개념의 통합 행정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대수도론은 이후 지방자치제의 ‘뜨거운 감자’로 불거지고 있다.

비수도권은 대수도권 논의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자와 김관용 경북지사 당선자는 “대수도론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오류”라고 비난했다.

○ “국가 발전 위해 규제 풀어야”

대수도론 찬성론자들은 수도권 공장 증설을 막을 경우 투자가 중국 등 주변 국가로 옮겨 가 국가 전체적으로 오히려 손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실시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는 수도권 규제로 공장 신축이 무산된 시점에 지방 이전을 고려하는 경우는 2%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의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상하이(上海) 충칭(重京), 일본의 도쿄(東京) 등 주변국 대도시권의 급성장을 감안할 때 현재와 같은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전체의 퇴보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도권이 광역화됐음에도 각 지방자치단체 간의 이권 갈등으로 주민들이 곤란을 겪기도 한다.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주민 K 씨는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하면서 짜증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강남행 버스는 1개 노선인 데다 그나마 배차 간격이 20분이다.

이는 서울시가 경기도 광역버스의 진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최근 서울시에 노선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교통과 식수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단일 생활권인 서울 경기 인천이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정개발원 정희윤 박사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 30년 실험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이제는 경직된 규제를 풀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 “대수도론은 지방 죽이기”

대구경북연구원 보고서는 대수도권 연합 결성 보도가 나오기 훨씬 전에 나온 것으로, 수도권에 대한 비수도권의 뿌리 깊은 경계심을 대변한다.

비수도권은 “규제가 풀리면 수도권이 인력과 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며 이는 비수도권의 경제적 기반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도권 규제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던 수도권 인접 지역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원 원주시 경제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산업단지 분양 가격이 싼 것 이외에는 중소도시의 장점이 없다”며 “인력, 물류 등 모든 면에서 기업들이 수도권을 선호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13개 시도는 다음 달 중순경 비수도권 자치단체장이 모두 참여하는 정책협의회 구성을 추진 중이다.

비수도권은 경제 통합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완구 충남지사 당선자는 인구 500만 명 수준의 경제통합적 클러스터(비슷한 업종의 다른 기능을 하는 관련 기업, 기관들을 모으는 것) 구축을 제안했다.

허남식 부산시장과 김태호 경남지사, 박맹우 울산시장 등 3개 시도지사는 동남권 공동 발전을 위해 ‘부산울산 경남 발전협의회’를 정기적으로 열기로 합의했다.

○ 국가발전 전략과 맞물려 추진해야

이종수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대수도권 논쟁이 지역 간 감정을 내세운 ‘바람몰이’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수도권 문제는 전체 국가발전 전략과 맞물려 추진돼야 한다”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서로 납득할 만한 논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철 계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 행정 차원에서 수도권 광역화의 명분은 인정한다”며 “하지만 비수도권에 대한 구체적 발전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독점이 계속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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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세계 주요도시 인구 - 핵심시설 지방 분산”

수도권 “뉴욕-파리-도쿄등 광역화로 경쟁력 키워”▼

대(大)수도론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수도권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국가와 국가 사이보다는 도시 대 도시 간에 더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이미 광역화돼 있다.

이들 주요 도시는 서울과 비슷한 인구를 핵으로 주변지역을 포함해 중심도시의 2, 3배 정도 확대된 광역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산업, 교통대책도 광역화된 개념을 축으로 짜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수도론 옹호론자들은 서울이 경제·산업 측면에서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서구와 같은 대수도 개념으로 덩치를 키우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세계적 흐름을 볼 때 지방 분산 이전 정책은 2000년 이전까지의 추세이고 그 이후에는 규제 완화를 통해 대도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세계 주요도시들이 1950년대 이후 인구와 주요 시설들을 외곽으로 이전하는 추세이고 국토가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수도권 규제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제 주요 도시 간 경쟁에 대처하면서 지방의 경쟁력을 함께 키우는 청사진도 제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김석철(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 명지대 건축대학장은 수도권 국제경쟁력과 지방의 경쟁력을 모두 높이는 대안으로 ‘한반도 구조개혁안’이라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수도권의 경쟁 상대인 각각 인구 3000만 명 규모의 베이징-톈진, 상하이-양쯔 델타 경제권과 겨루기 위해 서울 경기 인천을 묶어 ‘서울 메갈로폴리스’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동시에 지방에는 △금강-새만금 어번클러스터(Urban Cluster) △부산-광양 어번클러스터 △영남 어번클러스터를 만들어 수도권과 지방의 경쟁력을 모두 높이자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반병희 차장 bbhe424@donga.com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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