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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참회록]③몸싸움정치 전위대/임인배 의원

입력 2003-08-21 18:47업데이트 2009-10-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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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기자서영수기자
지난해 8월 31일 새벽. 한나라당 수석부총무를 맡고 있던 임인배(林仁培) 의원의 집에 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겨우 눈을 뜬 임 의원이 수화기를 집어 들자 이규택(李揆澤) 당시 원내총무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즉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공관으로 가 박관용(朴寬用) 의장을 국회로 ‘모셔오라’는 게 이 총무가 내린 지시의 골자였다. 당시 민주당 의원 60여명은 의장공관으로 몰려가 오전 10시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김정길(金正吉) 법무부장관 해임건의안이 처리되지 못하도록 박 의장의 출근을 원천봉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임 의원은 ‘수십명의 여당의원들에게 붙잡혀 있는 의장을 무슨 수로 빼내온단 말이냐’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났다. 하지만 연락이 닿는 대로 동료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한 시간 뒤 현장에 도착한 임 의원은 30여명이나 되는 당 소속 의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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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던 이회창(李會昌) 후보에 대한 충성심이 ‘자력처럼’ 작용한 결과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임 의원은 회고했다.

이에 앞서 2월 1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송석찬(宋錫贊) 의원이 이회창 총재 장남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을 제기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줄줄이 퇴장했다.

“전형적인 3김(金)식 패거리정치였죠. 이 전 총재는 ‘3김식 정치 극복’을 여러 번 강조했지만 대범하게 넘길 수도 있는 여당의원의 발언에 우리 당 의원들이 앞다퉈 과잉충성에 나섰던 거죠.”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임 의원은 몸싸움과 고함으로 얼룩졌던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털어놓으며 “가끔은 자식들이 이런 장면을 TV로 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도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특히 98년 2월 25일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직후 한나라당이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6개월간이나 처리해 주지 않는 ‘몽니’를 부린 데 대해 ‘뼈아픈 잘못’이라고 자성의 소리를 토했다.

“당내에서도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DJP정권이 미워도 첫 총리 인준은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6할 정도로 다수였어요. 그런데도 당 지도부의 인준안 저지 방침에 누구도 제동을 못 걸었던 거죠.”

임 의원은 “당시 거당적으로 JP를 총리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우리 당이 두고두고 ‘발목 잡는 좁쌀정치’라는 비난을 듣지도 않았을 것이며 대선에 연거푸 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모든 사안에 ‘당론’이라는 굴레를 씌워 의원들을 사실상 당 지도부의 ‘사병(私兵)’으로 동원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의원은 공천권을 갖고 있는 당 지도부를 의식해 과잉 행동을 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털어놓았다. 그는 99년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때 국민회의 소속 B의원이 이회창 총재를 ‘대통령감이 안된다’고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B의원, 그만해’라고 소리쳤던 기억을 되새기며 “기억하기조차 싫을 정도”라고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초선인 15대 국회 때는 특히 몸싸움에 많이 나섰어요. 정권이 정말 잘못한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몸싸움을 벌이는 싸움꾼으로 변해 있는 내 모습을 신문지면에서 사진으로 보면서 여러 차례 ‘이런 꼴이 되려고 10년간 준비해 국회에 들어왔나’ 하는 허탈감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초선의원들도 ‘전투’에 선뜻 나서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충성’을 보여줘야 할 카리스마적 지도부가 사라진 만큼 그럴 필요가 크게 줄어든 것이 이유일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러나 확고한 지도력을 가진 당 대표나 차기 대권후보가 나타나면 또다시 여야간의 극한대치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걱정했다. 지금이야말로 ‘동네주먹간의 육박전’ 같은 세 싸움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과 타협’으로 국회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임인배 의원은…▼

대검 중수부 수사관 출신으로 15대 총선에서 경북 김천에서 당선된 재선의원(47세).

수사관 시절부터 장학회 등을 운영하며 가난한 고향의 우수학생 육성에 관심을 쏟는 한편 꾸준히 지역기반을 다진 끝에 여의도 입성의 꿈을 이뤘다. 직선적이면서도 담백 솔직한 성격. 김천중 시절에는 100m 달리기 김천시 대표로 선발돼 도내 학생체육대회와 시민체육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2002년 5월부터 올 6월까지 한나라당의 수석부총무를 맡았다. 1994년에는 동국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1년반 동안 한성대에 출강했고,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실명소설 ‘조국을 남기고 임은 가셨습니다’를 출간(1995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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