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법]법체제 정비안돼 부정부패 만연

  • 입력 2001년 2월 5일 18시 44분


《내전에서 살육당한 200만의 영혼이 떠도는 ‘킬링필드’의 땅

캄보디아. 비극과 가난이 점철돼 있는 이 저개발 국가에서 법과 인권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는 캄보디아 평화협력연구소(CICP) 초청으로 1월10일부터 8일간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공산주의를 청산하고 평화를 지지하는 중립국을 선언한 캄보디아가 어떻게 법과 체제 정비를 이뤄가고 있는지에 대해 탐사해보는 것은 ‘법률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따라 캄보디아 법률여행을 특집으로 준비했다.》

▼캄보디아 법치 현주소▼

캄보디아엔 없는 것이 많다. 백화점과 극장이 전혀 없다. 뒤에 다섯 명까지 매달릴 수 있는 오토바이는 많아도 택시는 보이지 않는다. 철도는 아예 없다. 그러다 보니 프놈펜 시내 도로엔 신호등이란 것이 없다. 외제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한데 엉켜 천천히 길을 찾는다. 그 사이로 최근 처음으로 설치했다는 신호등 하나가 보인다.

훈센 정권이 외형적 안정을 찾았을지 모르나 제도적으로는 그 혼란의 끝이 어디쯤인지 예측하기 힘들 지경이다. 우선 국가 운영을 위한 제도적 시스템, 즉 법치주의의 기본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법(私法)관계에선 부동산의 등기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내전을 전후한 소유권 싸움이 어지럽다. 공법 쪽에선 강간이나 살인범을 감옥에 넣긴 하지만 극심한 부정부패엔 손도 대지 못한다.

캄보디아에서 법관은 다른 공무원들이 그렇듯 뇌물의 화신 정도로 여겨진다. 미화 20달러의 월급은 그 수십 배의 뇌물을 붙여먹기 위한 원본에 불과하다. 뇌물을 받지 않으면 아마도 굶주려 법정에 앉아 재판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앙코르와트로 알려져 있는 인구 80만의 제2의 도시 시엠립(Siem Reap)에는 판사 한 명(예비판사 3명)에 변호사가 넷이다. 그 중 세 명의 변호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변론만 한다.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인권법률 그룹에 둘, 리걸에이드(Legal Aid)에 한 명이 근무한다. 시엠립 법원에서 한 달에 약 20건의 재판이 열리는데 비정부기구에 근무하는 변호사 셋이 거의 모든 형사사건을 다 받아서 변론하는 셈이다. 그들은 물론 규정에 따라 일절 보수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월급은 350달러이다. 잔심부름을 하는 어린 여직원도 판사 월급의 세 배가 넘는 65달러를 받는다.

캄보디아에선 이런 법률사무소를 NGO라고 부른다. 회원도 단 한 명도 없다. 모든 재정은 미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외국의 원조에 의해 충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NGO가 가장 부자이기도 하다. 외국의 도움에 의해 마비된 국가 기관의 기능을 일부 담당하는 곳이 캄보디아와 같은 저개발국가의 NGO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법률가들을 필요로 한다. 현재 왕립프놈펜 대학엔 법학과가 없다. 전국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곳은 ‘법률경제대학’ 뿐이다. 현직 최고법원 판사인 콩 피룬은 ‘캄보디아 로센터(Law Center)’라는 간판을 붙이고 자기 집 이층에서 야학을 열어 젊은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친다. 그들을 전국에 보내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법률지식과 인권의식을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다.

젊은이들의 눈빛은 유달리 인상적이다. 캄보디아의 미래는 그들에게 달려있는 셈인데 혼란을 빠져나와 정돈되어가는 한 국가의 역사 속에서 법률과 제도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차병직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캄보디아 법은…정치보복-사형금지 명문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의 포첸통 국제공항에 내리면 곤혹스런 일이 기다리고 있다. 환전소가 보이지 않는다. 없는 것은 환전소만이 아니다. 택시 공중전화 정기노선 버스, 영화관, 그리고 처벌받는 공무원도 이 나라에는 없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결코 절망에 찌든 나라가 아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여유가 있다. ‘해피 캄보디아’, 프랑스 화가 스테판 데라프리의 그림처럼 밝은 일상과 장래의 꿈이 살아있다. 참혹한 킬링필드와 정변을 겪으면서도 국민의 가슴 속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전승되어 있다.

1993년 헌법이 제정되고 유엔의 감시 아래 두 차례 선거를 치렀다. 98년 선거는 공정했다는 공식보고다. 복수정당제를 표명하고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공산주의의 잔재는 사라졌다. 평화를 존중하는 중립국임을 선언했지만 군대는 비대하기 짝이 없다.

아직 ‘사법부의 독립’이란 낯선 구호이고 부패는 일상적인 일이다. 아직도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 포트 재판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고발자인 동시에 공범”이기 때문이라는 한 원로 지식인의 탄식이 허허롭다.

미국 국무성이나 유엔이 발행한 인권보고서는 한국과 캄보디아의 인권수준이 비슷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각종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한 시기도 비슷하다. 정치 보복과 사형을 금지하고 여성의 지위를 보호하는 조항을 담은 캄보디아의 헌법이 더욱 더 인본사회와 문명의 축복을 담고 있다.

두 나라를 가르는 큰 차이는 역시 경제력이다.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나라로 알려진 ‘사우스 코리아’의 책임은 막중하다. 스스로 법치사회 시민사회 청결사회를 정착시켜 본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잘살게 된 나라의 여유를 가난한 나라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전액 장학금을 줄 테니 학생을 보내달라.” 프롬펜 법률경제대학 학장실에서 조우한 우리 나라 어느 대학에서 보낸 서신이 사뭇 자랑스럽다. 국제사회에서는 ‘신흥졸부’, 인도주의 정신이 메마른 냉혈국으로 평가받는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

▼한국에서 배우자-대학생들 민주화 시민운동 관심▼

캄보디아는 형식상으로는 중립국을 표방하는 군주제 국가다. 그러나 국왕은 시민들에게서 존경은 받지만 실권은 없다. 아직도 군부의 입김이 막강하다. 캄보디아 평화협력연구소를 운영하는 노로돔 시리부드왕자는 외무장관에 재직하다가 훈센 총리에 의하여 외국으로 추방된 적도 있다.

한국은 이들에게 희망일 수 있을까.

“메콩강이라는 수력자원의 보고가 있지만 전력난에 시달리고 드넓은 평야를 가지고도 농업은 후진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도층의 부패로 국가운영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지요. 한국은 어떻게 민주화를 이루었지요?” 회의 참석차 서울에도 수차례 다녀온 적이 있다는 한 시민운동가가 물었다.

프놈펜 대학의 법학 및 경제학부 학생들도 한국의 경험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행한 민주화와 시민운동에 관한 강연에는 청중이 가득찼고 강연이 끝나자 질문들이 쏟아졌다. 인터넷에 연결된 20여 대의 PC를 갖춘 전산실, 낡았지만 붐비는 도서관과 서가의 외국 학술지 등이 희망을 싹을 보여준다.

캄보디아에서는 우리나라 돈으로 매달 100만원이면 큰 법률회사(로펌)를 운영할 수 있다. 우리나라 로펌의 한끼 회식비용 정도로 이 나라 전체의 법률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뿐만 아니라 경제 행정 등 모든 면에서 이제 막 걸음마단계에 있는 캄보디아에 우리가 희망이 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정선 (서울대 국제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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