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정철]大學구조조정, 평가보다 설계가 급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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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철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신정철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교육 발전을 이룩하였다. 대학교육의 발전 수준은 선례를 찾기 어렵다.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미국 대통령도 수시로 한국의 대학교육을 거론하며, 대학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한국을 벤치마킹하라고 한다. 또한 교수들의 연구 생산성, 대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등 많은 면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장점보다는 문제점을 더 크게 보는 관성 때문에 이러한 평가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해외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학교육은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학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어려운 지식 중심으로 되어 있고, 강의법 일변도라서 학생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또 취업에 적합한 교육을 하지 못해 대졸자 취업률이 낮으며, 등록금이 높아서 대졸자들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학 운영이 투명하지 못하여 일부 대학 경영자는 교비를 횡령하고, 부실 교육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태를 거론하며 언론이나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대학 구조개혁을 외친다.

이에 호응하여 정부가 구조개혁 평가를 한다고 하여 모든 대학이 몸살을 앓았다. 부실 대학 위기에 처한 대학들은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는가 하면, 내로라하는 대학들도 모두 긴장하고 산더미만 한 평가 자료를 준비하고, 면접시험도 치렀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 연구에 투자되어야 할 막대한 재원과 노력이 평가에 투자되었다. 결국 작년 8월에는 대학별 평가등급이 공개되었고, 지난주에 한 대학법인이 자진 폐교 의사를 밝혔다.

대학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이다. 정책 설계에 따라 대학 경쟁력이 높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대학에 고통만을 남기고 경쟁력은 뒷걸음칠 수도 있다. 현재의 구조개혁은 서로 상충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 같다.

정부의 각종 평가 사업과 정책을 통해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의 구조개혁 목표가 있다. 첫째는 부실대학을 솎아내는 것, 둘째는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것, 셋째는 산업 밀착형 교육을 통하여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목표는 각각 다른 수단을 통하여 달성 가능하고, 그 대상도 다르다는 점이다. 부실 대학을 솎아내기 위해서는 소수의 문제 대학들을 세밀하게 점검하여 퇴출시킬 수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 경쟁력이 높은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여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산업밀착형 교육을 위해서는 산학협력을 잘하는 대학들을 집중 지원하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구조개혁, 연구비 지원, 산학협력 지원 등에 있어 각 대학의 특성에 관계없이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재정 지원이라는 꿀맛에 도취되어 어제는 퇴출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오늘은 연구중심대학이 되기 위해, 내일은 산학협력 중심대학이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구조개혁 정책은 정책 목표에 따라 대상별로 각기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퇴출 대상 선정을 위한 평가와 경쟁력 향상을 위한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지표는 물론이고, 평가운영 자체도 달라야 한다. 이것은 정책 목표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를 신설하라는 뜻이 아니다. 지나치게 평가에 의존하는 것은 자칫 평가만능주의(evaluative states)를 초래하며, 정부나 대학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책 설계에서 평가 부담은 최소화하되, 정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평가에 담아내는 예술적 지혜가 필요하다.

신정철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대학교육#구조개혁 평가#부실대학#정책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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