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정신분석학으로 살펴본 인터스텔라

  • 입력 2014년 12월 15일 1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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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우주의 블랙홀 같은 사랑
인터스텔라


내가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던 1970년대는 아직 인류의 달 착륙 여운이 많이 남아 있을 때였다. 당시에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우주 도시에서 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울러 석유를 비롯한 자원고갈로 인해서 인류가 멸망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내용이 하루가 멀다고 신문에 실리던 때였다.

COLUMNIST 최명기 EDITOR 김수석 PHOTO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석유는 몇 년도까지, 석탄은 몇 년도까지, 철강은 몇 년도까지 사용할 수 있고 그다음에는 자원부족으로 인해서 인류가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다들 믿었다. 게다가 핵전쟁의 공포 역시 심각했다. 그래서 우주개발이 인류의 살길이라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인해서 핵무기로 인한 인류 절멸의 공포가 사라지고, 에너지효율이 높아지면서 자원고갈에 대한 공포심도 사그라졌다. 그러면서 우주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지금은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현실에서는 우주와 인류가 더는 가까워지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는 상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우주에 대한 열망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영화 <인터스텔라>에 몰리는 관객들이 보여주고 있다.


석기시대의 ‘뇌’를 매료시킨 ‘우주’라는 낭만적인 도피처

<인스터텔라>에 대한 호불호를 나누는 중요한 요소는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관객의 친화력과 호기심의 정도일 것이다. 여행을 가도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과 건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겠지만, 자연을 싫어하는 이에게는 그 전설이 아무런 재미도 없다. 이는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주장한 다중지능이론과 같은 것이다. 가드너는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공간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과 더불어 자연주의자 지능(Naturalist Intelligence)을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재능 중의 하나로 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주에 대한 친화력이 높은 사람은 <인터스텔라>가 밤하늘에 얽힌 위대한 전설로 다가온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소 억지스러운 SF 영화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멀고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영국 억만장자 러처드 브랜슨은 버진 갤러틱이라는 우주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요금은 25만달러(약 2억6500만원)에 달한다.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베조스도 블루오리진(Blue Origin)이란 우주여행사를 설립했다. 여태까지 우주탐험은 NASA를 비롯한 각국의 국가기관이 주도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앞서 언급한 기업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우주탐험을 주도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주사업은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죽기 전에는 지금 오지를 탐험하는 정도의 비용으로 달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평범한 이들에게 우주란 과학적인 영역이라 기보다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영역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신도 있고 종교적이 추앙심도 있다. 더불어 인간의 뇌는 여전히 석기시대다.

인류가 이렇게 합리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 것은 고작 백 년 남짓하다. 통계라는 것이 생기기 전까지의 인류는 개인에게 닥친 행운과 불운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행운을 불러일으키고 불운을 피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중 일부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무 의미 없는 미신이지만, 당시에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극복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21세기 최첨단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로또 복권 당첨 번호를 맞출 수 있고, 카지노 기계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여전히 여러 가지 사건에 자기 나름의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자기초월지수’라고 표현한다. 자기초월지수가 너무 높은 사람은 만사를 행운과 불행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부적을 붙이거나 굿을 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대로 자기초월지수가 너무 낮은 사람은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지면 희망을 잃어버린다.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고 포기해버린다. 그러다가 성공하게 되면 겸손하지도 못한다. 모든 것이 자기가 잘해서인 줄 알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난 줄 알고 행동하다가 종국에는 몰락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우연한 일이 행운이나 불행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혹은 신비롭거나 영적인 장면을 보게 되면 자기초월이라는 본능이 발동한다. 그래서 관객은 <인터스텔라>와 같이 미지의 공간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서 희망을 얻기도 하고 겸손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희망’이라는 ‘거짓말’을 먹고 산다

<인터스텔라>에는 인류의 종(種)을 이어가기 위한 두 가지 계획이 나온다. 플랜A는 현재 지구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플랜B는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포기하고 인공 배양된 상태인 인류를 다른 별에 심는 것이다. 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탐험에 자원한 쿠퍼는 플랜A가 우선이다.

그러나 만 박사에게는 플랜B가 우선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묘한 습성이 있다.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의 일에 대해서는 항상 대의가 우선이다. 타인이 집단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면 이기적이라고 비난을 한다. 반면 자신의 이익이 걸릴 때는 집단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동료를 속이고 혼자 살아남으려 했던 만 박사는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이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위해서라고 합리화한다. 사랑하는 이가 있는 별에 먼저 가고자 했던 아멜리아 역시 자신의 이기심을 감추고 수집된 정보의 정확성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까?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상황에서 판단력을 잃어갈 때 우리를 지켜줄 지침은 ‘수단이 목적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진부한 명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절차, 수단, 방법이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거짓은 뒤끝이 좋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거짓으로부터 희망을 얻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 교수가 불가능한 플랜A를 가능하다고 한 것은 결국 플랜B를 성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플랜A는 거짓희망을 주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이러한 거짓희망을 심리학에서는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플라시보는 영어로 ‘가짜약’이라는 뜻인데, 가짜약을 먹더라도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면 증상이 개선된다는 것에서 빌려온 말이다. 그와 함께 ‘피그말리온 효과’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한 학생 군에게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풀 수 있다”는 자신감과 칭찬을 주고, 다른 학생 군에게는 “풀기에 너무 어려운 문제이니 못 풀어도 된다”는 뉘앙스를 주면 비슷한 능력을 가진 학생 군이더라도 전자의 학생 군이 더욱 높은 성적을 보이게 된다. 결국은 거짓이더라도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대인관계에서도 상대에 대해 질타만을 늘어놓기보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동기를 유발해주면 서로 간의 심리적 불안정이 해소되고 능률이 올라간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합리화된 나쁜 거짓말인가, 아니면 상대를 배려하고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착한 거짓말인가에 따라 거짓말도 그 양상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하루가 짧고 평생이 긴 시간을 살아라

<인터스텔라는> 우리로 하여금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중력이 커지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늦게 흐르게 된다. 그러므로 중력이 강한 별에서의 한 시간이 중력이 약한 별에서는 수년의 시간에 해당될 수도 있다.

그래서 블랙홀에 갇혀 동면하다 깨어난 아버지가 딸보다 더 젊은 상태가 된다. 그런데 필자는 굳이 중력이 아니더라도 시간은 본래 상대적이라는 것을 내원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종종 느낀다.

흥분해서 누군가를 야단치는 이에게 있어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겠지만, 야단을 맞는 이의 입장에서는 블랙홀에서처럼 시간이 안 갈 것이다. 사랑에 빠져서 안달이 난 남녀에게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만, 권태기에 빠진 남녀에게는 시간이 더디 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하루하루는 더디게 가는데 세월은 너무 빨리 흐른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이것은 사실상 최악의 삶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삶은 어떤 삶일까?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고 재밌게 흘러가고 그렇게 지나간 과거를 돌아봤을 때 생각나는 것이 많은 삶이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살면서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이다.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값비싼 옷이지만 옷장에 처박아두고 입지 않는 옷이 있고, 반대로 가판에서 샀더라도 본인이 선택했다면 구멍이 날 때까지 입게 되는 티셔츠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선택한 삶을 산다는 느낌이 있으면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을 인생이라는 큰 줄기에 통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나는 착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결혼했다’, ‘나에게는 자녀가 있다’는 식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그것을 자서전적 기억이라고 한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이 이러한 자서전적 기억에 통합될 때 의미가 있다.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다 보면 뭔가 매일 하기는 하는데 그것이 자서전적 기억에 통합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의미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중력이 가져오는 시간의 물리적 상대성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서전적 기억이라는 상대적 시간의 바다에 살고 있다.


콩가루가족의 플랫폼화, 그다음 정거장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에는 미움이라는 감정이 섞여 있다.

1997년에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콘택트>라는 영화가 국내에 개봉했었다. 우연의 일치로 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매튜 매커너히가 이번에 <인터스텔라>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그런데 <콘택트>는 국내에서 흥행에 참패했다.

조디 포스터가 역을 맡은 앨리 에로위는 어렸을 때 허리케인에 잃은 아버지를 항상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외계인을 접하게 되고 외계인이 보내준 설계도에 따라서 우주선을 만든다. 그리고 그 우주선을 타고 앨리 에로위는 4차원(혹은 5차원 공간)에서 다시 아버지와 재회한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 영화는 국내 흥행에 왜 참패했을까? 필자는 아버지와 딸의 갈등이 없는 것이 참패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부모의 이혼이 잦기 때문에 어려서 아버지와 헤어져 살아가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미국에서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감정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그리움이 낯선 감정이었다. 그보다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1998년 개봉된 <아마겟돈>은 국내에서도 상당한 히트를 쳤다.

해리(브루스 윌리스)는 젊어서 홀몸이 되어서 딸인 그레이스(리브 타일러)를 키운다. 그런데 딸인 그레이스(리브 타일러)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A.J(벤 애플렉)를 사귄다. 영화의 마지막에 아버지 해리(브루스 윌리스)는 A.J(벤 애플렉)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간섭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부모의 헌신과 사랑에 대한 환상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못된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진정한 부모를 영화 속에서 보면서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단순히 부모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콘택트>는 국내흥행에 실패한 반면 부모가 못난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을 그린 <아마겟돈>은 국내흥행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인터스텔라>에서 아버지와 딸의 사랑은 어떠한가?

우선 아버지의 지극한 희생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딸의 애증이 있다. 한국의 관객들이 선호하는 부녀의 심리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것도 분명 흥행의 이유 중 하나다.

이처럼 국내에서 가족애란 흥행의 보증수표 중 하나다. 이는 가족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학자들은 가족을 일종의 플랫폼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한 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변치 않았지만, 지금은 현재 가족을 이루고 있더라도 다음 가족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과거에 콩가루가족이라고 썼던 말이 점점 보편화된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사람들이 가지는 ‘가족에 대한 환상’은 더욱 강해진다. 마치 나라가 엉망일수록 완벽하게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나라를 갈망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가족의 의미는 점점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지고지순한 가족애를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가

쿠퍼는 블랙홀 안에서 머피에게 중력방정식을 풀 수 있는 힌트를 주고, 머피는 이를 통해 결국 인류를 구원한다. 쿠퍼는 머피에게 중력방정식을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중력보다 강력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이었노라 말한다. 과연 인류를 구원해낸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대상에 따라서 다르게 정의할 수 있고 그 의미도 달라진다. 이성 간의 사랑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당연히 그 의미가 다르다. 그리고 학문에 대한 사랑, 자동차에 대한 사랑, 애완견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역시 그 의미가 다르다.

이처럼 대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사랑이지만, 모든 사랑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자발적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누가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믿고 상대방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결정의 기본원칙은 물물교환이다. 내가 이 정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저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설혹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는 이들도 사랑에 빠진 순간만큼은 자신들이 단지 조건 때문에 사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건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허다하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늙은 부자와 사랑을 하는 경우 상대방 남자가 부자가 아니었다면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 남자가 엄청난 부자이기에 그 여자의 눈에는 그 남자가 남들이 보는 것과 달리 젊어 보이고, 그 남자의 튀어나온 배도 귀여워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에는 희생이 전제된다. 부자인 남자는 설혹 자신이 가난해져도 여자가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고 여자는 남자가 돈이 없어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자가 가난해졌을 때 과연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희생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순간은 서로가 희생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억지로 자녀를 가지지 않는다. 자신이 원해서 아이를 가진다.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자연스러운 존경을 원하고 자식은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한다. 부모는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자식이 자신을 돌봐줄 것이라고 믿고 자식은 부모가 언제까지나 자신을 위해서 희생해주리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현실에 부닥쳤을 때 사랑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 사랑의 감정은 언젠가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랑’을 객관화해서 수치화할 방법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을 모두 기술하게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공통문항을 뽑는다. 그래서 ‘사랑의 표준’을 만들어낸다.

그 후 그 내용을 가지고 심리검사를 한다. 그렇게 하면 심리검사를 통해서 누군가 사랑에 빠졌는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다. 평균보다 점수가 높으면 사랑이 깊은 것이고 평균보다 낮으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여전히 주관적인 부분이 많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좀 더 객관적인 방법으로 뇌기능을 살펴볼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간절하고 애틋한 감정이 뇌에서 얼마나 활성화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사진을 보여주고 감정과 관여된 부분이 얼마나 활성화되는지를 기능성MRI나 뇌파를 통해서 측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욕을 관장하는 특정 부위만 활성화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욕망일 수 있다. 따라서 욕망과 관련된 부위와 전두엽 전체가 동시에 활성화된다면, 그것은 사랑에 더욱 근접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사랑이란 이처럼 과학적인 통계와 수치로 가늠하기 어려운(또는 가늠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존재할 것이다. 필자는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랑이 없다면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남녀가 사랑하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후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출산하더라도 양육을 위한 사랑이 없으면 자녀가 올바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의미는 다양하며 그것의 명확한 실체는 볼 수 없을지라도 인류는 ‘사랑’이라는 기초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스텔라>에서 사랑이 인류를 구원했다는 메시지는 어떤 점에서 맞는 말이다.

최명기 소장은…
정신과전문의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저서 <시네마테라피>, <걱정도 습관이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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