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어려운 단어 ‘화학’. 그러나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화학이 크고 작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광렬 교수가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안전·산업에 얽힌 화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외선은 피부 표피층과 기저층에 침투해 피부를 검게 태운다. GETTYIMAGES
길 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십중팔구는 검게 그을린 피부보다 잡티가 없는 밝은 피부를 원한다고 할 것이다. 피부 미백에 성공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을 알아보자.
사람 피부색은 기본적으로 유전자가 정해준다. 멜라닌 세포가 만들어내는 멜라닌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피부색이 결정되는 것이다. 멜라닌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흑갈색을 띠는 유멜라닌, 다른 하나는 노란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페오멜라닌이다.
멜라닌 세포는 피부 기저층에 있다. 이 세포가 멜라닌을 만들어 멜라노좀으로 포장한 다음 자기 주변에 있는 각질형성세포로 보낸다. 각질형성세포는 점차 각질세포로 변해 피부 맨 바깥쪽으로 간다. 각질세포 속에 멜라닌이 얼마나 있는지, 유멜라닌과 페오멜라닌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우세한지에 따라 피부색이 결정된다.
멜라닌 생성 촉진하는 여성호르몬
자외선(UV)은 파장 길이에 따라 UVA, UVB, UVC로 나뉜다. 이 중 파장이 가장 긴 UVA의 경우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작으나 피부 기저층까지 깊숙히 침투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긴 파장은 UVB로 에너지가 크고 피부 표피층까지 침투할 수 있다. 피부에 침투하는 이 두 가지 자외선이 작용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UVA가 피부 기저층에 침투하면 그곳에 있던 멜라닌 세포는 즉각 반응해 타이로신을 타이로시나아제라는 효소를 이용해 산화시킨다. 그 결과 도파(DOPA)가 만들어지고, 도파는 다시 산화돼 도파퀴논 등 여러 중간 단계를 거쳐 멜라닌이 된다. 구름이 끼어 흐린 날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고 수영하면 피부가 검게 그을리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에너지가 큰 UVB는 주로 표피층에 작용해 일광 화상(Sunburn)을 유발한다. DNA를 직접 손상시켜 피부암 및 광노화를 일으킨다. UVA처럼 피부를 즉각 시커멓게 만들지는 않지만 UVB에 노출되고 몇 주 뒤 피부는 검게 변한다. 다만 UVA도 DNA 손상과 광노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UVA나 UVB는 피부 건강에 해롭다.
한편 여성호르몬은 멜라닌 세포를 직접 자극해 멜라닌 생성을 촉진한다. 기미가 여성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도 바로 여성호르몬과 자외선이라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미, 주근깨, 검게 탄 피부를 만드는 것이 자외선인 만큼 피부 미백을 위해서는 강한 자외선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뻔한 답이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은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바르는 것이다. 자외선 차단제는 옥시벤존 같은 유기화합물 또는 산화아연, 산화티타늄 등 무기화합물로 만들어진다. 이들은 자외선을 반사 또는 산란시켜 피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거나 스스로 자외선을 흡수해 소량의 열로 바꾼다.
피부 속에서 멜라닌이 생기는 과정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도 있다. 하이드로퀴논이라는 화합물은 연고 형태로 시중에서 판매된다. 기미나 주근깨가 생긴 부위에 바르면 하이드로퀴논이 멜라닌 생성의 핵심 효소인 타이로시나아제의 작용을 억제한다. 또 독성 작용을 통해 멜라닌 세포를 파괴해 멜라닌 생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멜라닌 생성이 차단되기 전에 만들어진 표피세포가 시간이 지나 피부에서 떨어져 나가면 기미나 주근깨가 옅어진다. 하지만 이 화합물은 자극성이 강해 넓은 영역에 바르면 안 되고 국소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이드로퀴논·니아신아마이드 제품도 효과
그을린 피부를 빨리 벗겨낼 수 있다면 밝은 톤의 피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AHA, LHA, PHA 같은 물질을 이용해 박피하고 레티노이드를 사용해 피부 재생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비타민C는 강력한 항산화 및 환원 작용을 통해 멜라닌 생성을 억제하고 이미 생성·산화된 검은 멜라닌을 환원시켜 옅은 색으로 바꾼다. 니아신아마이드는 멜라닌 세포에서 멜라노좀의 이동을 방해해 피부를 덜 어둡게 만든다. 비타민C나 니아신아마이드가 함유된 화장품을 바르면 피부색이 밝아지는 이유다.
피부를 밝게 만드는 방법을 정리해보자. 자외선 차단제로 자외선 침투를 막고, 이미 생긴 기미나 주근깨는 하이드로퀴논 제품으로 없애며, AHA·LHA·PHA로 박피하고, 마지막으로 비타민C나 니아신아마이드가 함유된 화장품을 바른다. 피부 미백도 과학이다.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사춘기는 처음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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