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X 동아닷컴 공동기획] 서울시와 서울경제진흥원(SBA)은 AI와 로봇, 휴머노이드와 자율주행, 스마트 제조 첨단 기술을 선보이는 서울AI로봇쇼를 성공리에 열었다. 시민과 함께 하는 참여형 로봇 전시회인 이번 행사에서 로봇 전문가 포럼과 로봇 경진대회, 로봇 기업과 연구기관의 성과 발표도 이어졌다. 동아닷컴은 서울시, SBA와 함께 서울AI로봇쇼에 참여해 로봇 친화 도시 서울을 이끈 유망 로봇 기업을 소개한다.
100세 시대,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질병의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한국인 사망 원인 중 상위를 차지하는 암(악성신생물)이 대표적이다. 그 중 대장암, 췌장암, 위암 등 소화기 기반 질병은 신체 절개 없이 내시경 검사만으로 조기 발견이 가능해 널리 쓰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내시경은 해외 제품이 독점한 상태로 기술 혁신의 속도가 더디다.
국내 병원에서 사용하는 내시경 장비 대부분은 기계식이다. 의사가 손잡이에 부착된 다이얼을 돌리면 쇠줄(와이어)이 당겨져 내시경 렌즈의 끝부분이 움직이는 구조를 가진다. 문제는 복잡한 구조로 손잡이가 무겁고, 다이얼의 저항이 커 의사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의사는 시술 내내 약 1kg에 달하는 장비 무게를 견뎌야 하며, 손가락과 손목에 과도한 힘이 가해진다. 이로 인해 많은 내시경 전문의들은 만성적인 엄지손가락 관절염과 손목 통증,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한다.
기계식 조작은 숙련이 필요하기에, 도제식 교육(1:1 교육)이 필요하다. 의사가 감각에 의존해 병변을 찾아야 하므로 진단의 정확도는 개인의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는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시장을 지배하는 해외 기업들은 내시경 장비 구조의 변화보다 영상 화질 개선에 집중하는 소극적 대응에 머물렀다.
이치원 메디인테크 대표 / 출처=IT동아
메디인테크(MedInTech)는 전동화 및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기계식 내시경 시장을 혁신하려는 의료기기 스타트업이다. “왜 내시경은 아날로그 방식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메디인테크는 내시경 기술 혁신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다. 어떻게 내시경에 전동화 기술과 인공지능 역량을 접목했을까? 이치원 메디인테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수술 로봇 연구하던 공학도, 내시경 혁신에 눈 뜨다
“수술 로봇으로 창업하기에는 초기 자본과 인력의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우리의 기술을 어디에 접목하면 가장 파급력이 클까 고민하던 중 내시경 시장이 보였습니다. 영상 기술은 발전했지만, 구동 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기계식에 머물렀죠. 외국 기업들이 장악한 내시경 시장에 전동화 기술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치원 대표는 공동 창업한 김명준 부대표와 서울대학교 의공학과에서 외과 수술용 로봇을 연구하던 공학도다. 졸업 이후 한국전기연구원(KERI)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수술 로봇의 핵심인 전동화와 기계 제어 기술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띈 분야가 내시경이다.
내시경 시장은 외국 기업 중심으로 형성됐다. 공통점은 작동 구조가 기계식이라는 점이다. 사람 손으로 직접 다룰 수밖에 없어 최근 화두인 로봇과 AI 기능을 적용하기엔 구조적 한계가 따른다.
메디인테크는 이 문제를 정면 돌파했다. 내시경을 전동식으로 설계해 손잡이(컨트롤러) 무게를 대폭 줄였고, 전자동 술기(수술 기법)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내시경 렌즈부의 방향 제어에 필요한 동력 전달 부품을 모두 전동식으로 교체했다.
메디인테크의 전동식 내시경 장비 ME-400(좌)와 ME-470(우) / 출처=메디인테크
이치원 대표는 “기존 내시경 조작 경험은 1kg짜리 아령을 든 채 손가락으로 줄을 당기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반면, 메디인테크 제품은 조작에 쓰는 힘 일부를 모터가 대신합니다. 그 덕분에 손잡이 무게를 기존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였고, 다이얼 조작 과정에 힘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의사의 피로도가 줄면, 그 혜택은 결국 세밀한 진료로 환자에게 돌아가게 될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메디인테크는 AI 기술 도입도 늦추지 않았다. AI는 병변을 자동 탐지하거나 소화기 내부를 파악해 내시경 렌즈부 진입 방향을 결정한다. 오진을 줄이고 내시경 자율 진입이 가능한 피지컬 AI(Physical AI) 개념을 도입한 셈이다. 이치원 대표는 자동차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바뀌며 자율주행이 가능해진 것과 같은 이치라고 강조했다.
이치원 대표는 ”외국 기업들이 영상 화질에 몰두할 때, 메디인테크는 영상은 물론이고 의사가 기기를 다루는 행위 자체를 혁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자체 개발한 하드웨어가 영상 신호를 직접 처리하기 때문에 지연 시간(Latency) 없이 실시간으로 AI 분석 결과를 보여주는 환경을 제공합니다“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의료계, 데이터와 경험 혁신으로 접근할 것
메디인테크의 고민은 혁신을 의료 시장에 알리는 일이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음에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의 보수적 시선을 극복하는 건 어렵다. 오랜 시간 외산 제품에 적응된 내시경 시장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받아들이려면 인식 전환을 위한 ‘한 방’이 필요하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메디인테크가 택한 방법은 데이터다. 메디인테크는 지난 2년간 서울대학교 병원을 포함한 국내 주요 대학병원 6곳과 협력해 약 500건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임상시험을 거치며 외산 내시경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임을 입증했다.
이치원 대표는 ”500명 규모의 임상시험은 스타트업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기존 내시경 제품 대비 성능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했고, 편의성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이 기존에 쓰던 익숙한 조작감을 유지하면서도 무게는 덜어낸 사용자 경험(UX) 혁신에 공들인 결과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메디인테크는 기술적 우위 외에도 경제적 효용성도 놓치지 않았다. 잦은 고장과 비싼 수리비는 병원 경영의 고질적인 골칫거리다. 메디인테크는 장비 가격과 유지보수 비용을 외산 제품 대비 약 60% 수준에 책정했다. 국산 기술로 직접 제조하고 수리하기에 가능한 구조다.
국내외 식약처 인허가 절차를 밟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인허가 이후 실제 임상 환경에서 메디인테크 제품이 쓰일 수 있도록 협업 논의도 진행할 방침이다.
글로벌 의료 설루션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어
메디인테크는 2025년 국내외 판매망 확보에 집중하며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치원 대표는 ”2026년부터 제품이 병원 현장에 널리 쓰이도록 역량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기술 고도화, 제품 양산 체계 확립, 마케팅 등 다양한 활동도 병행합니다“라고 말했다. 양산 체계 구축에도 속도를 낸다. 메디인테크는 외부 투자와 정부 융자 프로그램을 활용,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요건을 갖춘 시설을 구축했다.
메디인테크가 척박한 의료기기 창업 생태계 속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서울경제진흥원(SBA)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SBA는 메디인테크에 연구개발(R&D) 자금 외에 네트워크, 마케팅 활동 등을 지원했다. 2025년에는 서울형 연구개발(R&D) 사업과 하이서울 기업 인증을 통해 기술 개발에 집중 가능한 환경도 제공했다.
이치원 대표는 “SBA 커뮤니케이션 클럽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단에 참여해 실질적인 비즈니스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이 외에도 서울경제진흥원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은 메디인테크 성장의 디딤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치원 메디인테크 대표 / 출처=IT동아
”메디인테크(MedInTech)는 의료(Medical)에 기술(Technology)을 담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내시경 회사로 출발했지만, 한 분야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전동화와 AI 기술을 다양한 의료기기에 접목해 의사의 숙련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높은 수준의 진료가 가능한 의료의 상향 평준화를 이루고 싶습니다. 그것이 의사에게는 편리함을, 환자에게는 안전을 선물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메디인테크는 내시경 관련 업무의 모든 주기를 아우르는 통합 설루션 제공이 목표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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