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국회의원…3개인생 김예지 “이번엔 동아마라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1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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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의정 활동을 하면서는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었어요. 새로운 분야라 적응도 해야 하고 제 관심 분야 정책도 개발해야 하고…. 혼자 요가를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달리기 시작했어요.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가는 개인 수련이고, 마라톤은 완주라는 목표가 있어서 좋았어요.”

김예지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월 26일 열린 고구려마라톤 10km에 출전해 ‘가이드 러너’ 홍산 씨(오른쪽)와 함께 달리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운동을 즐긴 김 의원은 건강도 챙기고 완주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김예지 의원 제공.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인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43)은 지난달 26일 서울 뚝섬 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린 고구려마라톤대회 10km에 출전해 달리다 반환점을 돈 뒤 얼마 안 가 넘어졌다. 레깅스에 구멍이 났고 오른쪽 무릎에 피가 흘렀지만 편의점에서 밴드를 사서 붙이고 완주했다.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는 그는 “마라톤은 완주라는 확고한 목표 의식을 심어준다”고 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회(VMK)에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VMK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리는 동호회다. 매주 토요일 서울 남산에서 함께 달린다. 비장애인들이 빛 나눔 동반주자(가이드러너)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달린다. 김 의원은 “다양한 분들과 함께 달렸다. 특히 이기호 VMK 회장님은 70세에도 정정하게 풀코스를 달려서 놀랐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말 서울대 체육관에서 장애인 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던 홍산 씨(28·서울대 산업공학과 박사과정)를 만나 주기적으로 함께 운동하고 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과정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한 홍 씨는 김 의원의 가이드러너가 돼 주 1회 1시간 30분씩 달리고 있다.

김예지 의원(오른쪽)이 지난해 10월 열린 제8회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어울림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있다. 김예지 의원 제공.
“시각장애인은 혼자 달릴 수 없습니다. 동반 주자가 있어야만 달릴 수 있죠. 그만큼 가이드 러너의 역할이 중요하고 고마운 존재입니다. 서로 시간은 물론 장소까지 맞춰야 하니 쉽지 않아요. 홍산 씨가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어 제가 그쪽으로 가서 운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을 시작한 뒤 우여곡절도 많았다.

“고구려마라톤에서 넘어졌듯이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처음엔 운동화를 잘못 신어 중간에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죠. 그런데 3km, 5km 등 목표를 정해놓고 꾸준히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게 좋았어요. 완주한 뒤 느끼는 성취감도 좋았고요. 사실 뭐든 수월하게 되는 일이 없잖아요. 이렇게 땀 흘려 노력해야 결실을 얻는다는 교훈도 얻고 있습니다.”

마라톤이 주는 매력은 뭘까?

“살다 보면 저희가 예측 가능한 것도 있지만 예측하지 못하는 게 더 많잖아요. 그런 예측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 때 마라톤 같은 힘든 운동에 익숙해지면 마음이 더 안정되는 것 같아요. 몸을 위해서 달리지만 결국 마음도 튼튼해지게 하는 게 마라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의원은 운동 마니아다. 어릴 적부터 수영을 했고 서울맹학교 때는 골볼, 피구, 발야구에 육상과 체조의 평균대까지 시도했다. 2007년부터 7년간 이어진 미국 유학 시절에는 웨이트트레이닝도 했다.

김예지 의원(가운데)이 2월 26일 열린 고구려마라톤 10km에 출전해 ‘가이드 러너’ 홍산 씨(오른쪽)와 함께 달리고 있다. 김예지 의원 제공.
“처음 가서는 공부하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운동에 대한 욕구가 생겼습니다. 공부를 더 잘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거든요.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피트니스센터에서 근육을 키우는 재미를 배웠습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머리도 맑아집니다.”

2014년 5월 귀국한 그는 다시 음악가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잠시 운동을 등한시하기도 했지만 2019년부터는 유산소 운동으로 탠덤 사이클(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팀을 이뤄 타는 사이클)을 시작했다. 그해 10월 제39회 전국장애인체전 사이클 여자 장거리에 출전했다. 메달 획득엔 실패했지만 출전이란 목표로 준비하는 과정이 좋았다. 겨울엔 스키와 바이애슬론을 했다. 2020년 2월 열린 제17회 전국장애인겨울체전 여자 크로스컨트리스키 4km 클래식 B 블라인딩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여자 바이애슬론 스프린트 4.5km(B) 블라인딩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김예지 의원이 안내견 ‘조이’와 포즈를 취했다. 김 의원은 평상시엔 조이의 안내를 받지만 마라톤에서는 ‘가이드 러너’의 안내를 받으며 달린다. 동아일보 DB.
피아니스트와 스포츠인으로 활약한 그는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장애인 문화, 예술, 체육 분야’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장애인 정책 입안에 있어 대한민국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배려’라고 착각하고 ‘생색’내는 것을 거부한다. 장애인에 대해 특혜를 줘야 한다는 문화와 생각이 남아있는 현재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차별’은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의원은 올 초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의정보고서’를 발간해 화제를 모았다. 2020년과 2021년도 의정보고서에 QR코드를 넣어 자막과 영상을 함께 제공했던 그는 이번엔 점자, 사진, 음성, 영상, 자막 등 다양한 접근성을 고려해 제작했다. “장애인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취지였다.

장애인들이 건강하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제가 계속 추진했던 일 중 하나가 장애인 스포츠 강좌 이용권 확대가 있습니다. 사용되는 예산보다 사용되지 못하는 예산이 많다고 지적을 받는 겁니다. 잘 살펴보니 장애들이 갈 곳은 마련해주지 않고 이용권만 줬기 때문입니다. 장애 유형도 시각 장애, 청각 장애, 지체 장애 등 다양합니다. 그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하는데 그냥 이용권만 주고 있었습니다. 갈 데가 없으니 이용권을 쓰지 않았던 것이죠. 장애인 전용이 아니라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스포츠시설이 멀어서 못 갑니다. 비장애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인식 전환도 절실합니다.”

김 의원이 피아노 전공을 본격 시작했던 고1 때도 배울 지도자를 찾아다니며 공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에지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해 8월 열린 제8회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어울림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달리고 있다. 김예지 의원 제공.
피아노와 마라톤의 공통점이 있을까?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피아노와 마라톤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아노도 연습량에 따라 연주의 질이 달라집니다. 마라톤의 경우에도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리느냐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죠. 하프코스,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땀이 필요하죠.”

김 의원은 19일 열리는 2023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 10km에 출전한다. 김 의원은 9일부터 16일까지 바레인(마나마)에서 국제의회연맹(IPU) 주최로 개최되는 제146차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 참석하지만 돌아와서 바로 동아마라톤에 출전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아직은 힘들면 ‘걷뛰(걷고 뛰다)’를 하는 수준입니다. 지난해부터 10km 대회엔 출전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공원에서 대회가 열리고 통제를 하지 않다 보니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하고 엉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국내 최고의 동아마라톤은 교통을 통제하고 서울 도심을 달리기 때문에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맘껏 달리고 싶습니다.”

김 의원은 “마라톤은 규칙적으로 훈련해야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지금은 10km에 도전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해 5년 안에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예지 의원이 안내견 ‘조이’와 걷고 있다. 동아일보 DB.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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