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인줄 알았는데… 온몸에 번지는 ‘화농성 한선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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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겨드랑이-엉덩이 등 피부 접히는 부위 발생
농포 생기고 고름도 차
재발률 50%… 완치 힘들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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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 전남대병원 피부과 교수(대한여드름학회 회장)
이지범 전남대병원 피부과 교수(대한여드름학회 회장)
얼마 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진료실을 찾은 중학생 환자가 있었다. 엉덩이와 사타구니 주변으로 분포된 심한 결절과 농양 때문에 계속 고름이 흐르고 주변 피부가 벗겨져 앉지도 눕지도 못했다. 제대로 씻을 수도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상태였다. 어머니는 학교도 잘 가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려 필자를 안타깝게 했다. 처음에는 사춘기에 흔하게 발생하는 여드름인 줄 알고 연고를 바르며 참아왔지만 점점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대학병원까지 찾았고 진단 결과 화농성 한선염(Hidradenitis Suppurativa)이었다.

화농성 한선염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질환이다. 주로 겨드랑이와 서혜부(사타구니), 엉덩이, 유방 아래 등 피부가 접히는 부위에 반복적으로 염증성 결절, 농양이 생기는 만성적인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주로 청소년기에 시작돼 성인기까지 계속되는데 초기 증상이 여드름과 비슷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방치하다 치료시기를 놓치고 고생하는 사례가 많다.

여드름과 마찬가지로 여러 원인으로 피부 각 부위의 모낭 입구가 막히면서 염증이 발생하고 붉거나 갈색의 단단한 종기가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 종기 부분에 농양이 차오르면서 물렁물렁한 농포로 변하고 이 농포가 피부로 터져서 밖으로 고름이 흐르기도 한다. 피부 속에서 터지면 진피층에서 누관을 형성해 번져가기도 한다. 여드름과 달리 고름이 터진 후에도 같은 자리에 염증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특성이 있다.

화농성 한선염은 만성적인 전신 염증성 질환으로 악화와 재발을 반복한다. 수술해도 재발률이 5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병변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눕지도 앉지도 못한다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도 많다. 민감한 부위의 시한폭탄 같은 병변과 흉터, 멈추지 않는 고름으로 인한 고통과 썩는 듯한 냄새 등은 환자들의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아직 정확한 질병 기전이 파악되지 않아 치료방법이 잘 정립되지 않았지만 증상이 심각하게 발전하기 전 전문의를 찾아 조기에 진단받고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치료는 상태에 따라 항생제나 소염진통제 등의 약물을 사용하는 것에 더해 병변을 째고 고름을 배출하거나 절제하는 등 수술적 처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법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도 있고 수술을 해도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최근 염증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양괴사인자(TNF)에 특이적으로 결합해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경로를 차단하는 생물학적제제(항TNF제제)가 효과를 인정받아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중증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화농성 한선염은 흔히 여드름과 같은 피부질환으로 잘못 인식되고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낮아서 환자도 적고 진단도 쉽지 않은 희귀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산정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다른 치료법이 없어 생물학적제제에 의존해야 하는 일부 환자의 경우 60%나 되는 환자 부담 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다른 중증 희귀난치질환들의 경우 생물학적제제로 치료받는 환자들은 정부의 산정특례 혜택을 받아 약가 부담이 10%로 줄어 치료 문턱이 낮아졌다. 반면 중증의 심한 화농성 한선염 환자들은 효과적인 치료법을 두고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

말 못 할 신체 부위 병변들의 고통스러운 통증과 고름, 외모 변화, 재발 등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는 데 더해 사회생활에서도 고립되고 단절된 화농성 한선염 환자들이 정부의 지원과 배려를 통해 더 이상 소외되지 않고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이지범 전남대병원 피부과 교수(대한여드름학회 회장)
#헬스동아#건강#의료#컴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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