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스토리북… 매주 음악회… “몸보다 마음부터 치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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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착한 병원]<25> 서울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행복요양병원은 환자에게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환자 스토리북’을 제작해 선물한다. 병원 직원이 환자에게 스토리북을 전달하고 있다.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제공
행복요양병원은 환자에게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환자 스토리북’을 제작해 선물한다. 병원 직원이 환자에게 스토리북을 전달하고 있다.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제공
지난해 여름 중견기업을 운영하던 송태영(가명·75) 씨는 서울 강남구 세곡동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에 입원했다. 평소 앓던 노인성 질환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송 씨는 아직 젊고 할 일이 많은데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했다.

하지만 이 병원의 작은 배려가 송 씨의 마음을 달랬다. 바로 병원이 제작한 ‘인생 스토리북’이었다. 스토리북에는 중국 만주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부인과의 결혼식, 자녀의 돌잔치, 회사 대표로 일하던 모습 등 소중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스토리북을 보며 송 씨는 ‘내 인생이 헛되지 않았구나’라고 느끼며 자존감을 회복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 환자 스토리북과 힐링 콘서트

요양병원을 찾는 환자는 대개 노인이다. 송 씨처럼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마음이 침울해지기 쉽다. 몸은 아프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요양병원의 특성상 긴 투병 생활을 하다 보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4일 오후 찾아간 행복요양병원은 이런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서비스가 잘 갖춰진 병원이었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 병원의 자랑은 환자 스토리북이다.

스토리북 제작은 7명으로 이뤄진 CS팀(고객만족팀)의 몫이다. 환자들은 40, 50대 여성인 CS팀원들을 딸이나 며느리처럼 편안하게 느끼면서 인생사를 들려준다. 팀원들도 환자의 희로애락을 취재하다 보면 자연스레 환자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는다. CS팀은 병원 시설, 업무, 식사 등에 관한 환자의 불만을 듣고 개선하는 역할도 맡는다. 박정식 CS팀장은 “환자도 아프기 전에는 빛나는 인생의 순간들이 있던 분들”이라며 “스토리북을 받아 본 환자가 자서전이 생겼다며 크게 기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매주 열리는 무료 음악회도 환자들의 마음을 달랜다. 음악회는 추울 때는 수준급 음향시설을 갖춘 강당에서, 날씨가 좋으면 원형인 병원 한가운데 자리한 200여 m² 규모의 중앙 정원에서 열린다. 중앙 정원에서 음악회가 열리면 환자들은 2층과 3층에 마련된 발코니에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마치 오페라 극장을 연상시키는 광경이 펼쳐진다. 음대 교수 등 수준급 음악가들이 재능 기부 형태로 공연에 참여해 왔다.

두 달에 한 번씩은 환자 가족이 참여하는 ‘힐링 콘서트’가 열린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가족도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콘서트가 열리기 전 비슷한 병을 가진 환자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과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가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조언하기도 한다.

○ 죽 종류만 20가지… 환자 입맛 달래

병원 식단에서도 세심한 서비스 정신이 느껴진다. 환자는 무엇보다 잘 먹어야 회복이 빠르지만, 노인 환자는 식욕을 잃기 쉽다. 병원은 이런 점을 고려해 20여 가지 죽을 제공한다. 280여 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에 영양사가 7명, 조리사가 27명이나 되는 것도 환자에게 맞춤형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강남구청이 설립하고 참예원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이곳은 국내 최상급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걷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4억 원대의 로봇재활치료기와 3억 원이 넘는 수중재활치료 장비는 국내 요양병원 중 이곳에만 있다. 고가의 장비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돼 로봇재활치료기는 회당 1만1000원, 수중재활치료 장비는 1만8900원이면 이용이 가능하다. 환자 침대에는 개별적으로 모니터가 달려 있다. 모니터를 통해 인터넷과 TV 시청 등이 가능하다.

뷰티센터와 찜질방은 환자와 가족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전문 미용원처럼 꾸며진 뷰티센터에서는 화장, 머리 손질, 네일 아트 등이 가능하다. 외모를 가꾸고 싶은 여성 환자를 위한 특별한 배려 차원에서 마련한 공간이다.

김옥희 참예원의료재단 이사장은 “환자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데서 의료가 시작된다”며 “구청이 마련한 최고의 시설에서 외국 요양병원 못지않은 치료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선정위원 한마디 “환자 인생 담은 스토리북 그 어떤 약보다 큰 효과” ▼

착한병원 선정위원들은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이 환자에게 제작해 선물하는 인생 스토리북에 높은 점수를 줬다. 김명애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인증사업실장은 “스토리북은 굉장한 아이디어”라며 “요양병원 입원으로 떨어질 수 있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그 어떤 약보다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구가 설립해 고가의 첨단 재활의료장비를 갖췄다는 점도 병원의 장점으로 꼽았다. 장동민 전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고가의 장비들을 갖춰 환자에게 제공하는 점이 좋았다. 다른 지역자치단체에서도 이런 기기를 구입해 운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박진수 인턴기자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음악회#스토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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