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 꼼짝마” 車 세우는 전자총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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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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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 쏘면 전자제어 엔진 멈춰… 국내 연구진 6개월 내 실용화 계획

#사례1: 폭주족 A 씨는 3·1절 이른 새벽에 친구 50여 명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굉음을 내며 시내를 질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엔진이 켜지지 않았다. A 씨와 동료들은 뚜벅뚜벅 걸어온 경찰에게 모두 연행됐다.

#사례2: 은행에서 돈을 훔쳐 자동차를 타고 달아나던 강도 B 씨. 갑자기 “텅” 하는 소리를 내며 자동차 엔진이 꺼졌다. 다시 시동을 걸어봤지만 묵묵부답.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이미 문 밖에는 경찰 한 사람이 수갑을 흔들며 서 있었다.

이 같은 가상 상황은 몇 년 안에 현실이 될 수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경찰용 전자총이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EMP)를 쏴서 자동차나 오토바이 엔진을 단숨에 정지시킬 수 있다. 폭주족이나 범죄자 단속 등에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 헬기 전자총으로 자동차 정지

광운대 최은하 교수 연구실에 있는 전자파(EMP) 발생장치 ‘천둥’(위쪽). 이 장치의 출력을 1000분의 1로 축소하면 교통단속용 전자총(아래쪽)이 된다. 전자총은 운전자나 승객에게 해를 주지 않고 도주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정지시킬 수 있다. 사진 제공 광운대
광운대 최은하 교수 연구실에 있는 전자파(EMP) 발생장치 ‘천둥’(위쪽). 이 장치의 출력을 1000분의 1로 축소하면 교통단속용 전자총(아래쪽)이 된다. 전자총은 운전자나 승객에게 해를 주지 않고 도주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정지시킬 수 있다. 사진 제공 광운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로 어떻게 자동차를 정지시킬 수 있을까. 모든 전자제품은 전자파의 영향을 받는다. 주변에 강한 전류가 흐르면 TV 화면이 ‘지지직’ 거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1970년대 이후에 개발된 자동차는 대부분 전자식 연료분사장치를 가지고 있고, 최신형 자동차는 전자회로(ECU)로 엔진을 제어한다. 자동차도 전자제품이라는 뜻이다. EMP를 맞은 자동차는 전자회로가 고장 나 연료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천천히 멈춰 서게 된다.

이 같은 전자총은 캐나다의 ‘유레카 에어로스페이스’사가 올해 초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했다. 공식 이름은 ‘고전압 전자기장 시스템(HPEMS)’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헬리콥터에 대형 전자총을 싣고 지상에서 달리는 자동차를 정지시키는 모습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도 최은하 광운대 전자물리학과 교수팀이 전자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미 컴퓨터 모니터나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등 작은 전자제품의 동작을 중단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6개월 안에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전자총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1개에 1000만∼2000만 원에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소총만 한 전자총 조준사격도 가능

전자총은 군용 EMP폭탄에서 유래했다. 최 교수도 지난해까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공동으로 EMP폭탄을 개발해 왔다. EMP폭탄은 적 기지나 함정, 항공기 등이 모여 있는 곳에 발사해 폭발시키는 전자폭탄이다. EMP폭탄이 터지면 레이더 등 모든 전자기기가 고장 나 기능이 마비된다. 밤이라면 정전도 가능해 적군의 활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국내에서는 유사시 북한의 핵시설이나 미사일기지에 터뜨려 북한의 공격을 늦출 수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현재 피해반경이 1km에 이르는 신형 EMP폭탄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MP폭탄은 1970년대 구소련에서 처음 개발됐으며 지금은 미국이 가장 앞서 있다. 2003년 이라크전 등에서 EMP폭탄을 사용해온 미국은 현재 피해반경이 7km에 이르는 EMP폭탄을 개발하고 있다. 스웨덴과 중국, 일본 등 일부 국가만 EMP폭탄 기술을 갖고 있다.

최 교수는 2007년 군용 폭탄의 출력을 낮추면 범죄자나 테러범을 잡는 데도 쓸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최 교수가 사용하던 EMP 발생장치 ‘천둥’의 순간 최대 출력은 약 50만 V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 이 출력을 1000분의 1까지 줄이면 오토바이 엔진 등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출력이 너무 높으면 전자회로가 모두 타버린다”며 “자동차나 오토바이용 엔진을 정지시키되 회로는 망가지지 않도록 출력을 정확히 조절하는 것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전자총은 범죄 차량만을 선택해 조준한 뒤 사격할 수 있다”며 “돌진해 오는 자살폭탄 테러 차량을 멈추게 하는 데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동영상 출처: 광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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