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그후 1년… 그녀가 달라졌다

  • 입력 2009년 4월 10일 02시 55분


지난해 4월 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이소연 씨가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4월 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이소연 씨가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렇게 바뀌었어요” 이소연 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한 직후(가운데) 무중력 환경에서 혈관이 팽창해 얼굴이 부었지만 3일 뒤 지상(왼쪽)에서보다 얼굴형이 갸름해지며 ‘우주미인’으로 변했다(오른쪽). 사진 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렇게 바뀌었어요” 이소연 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한 직후(가운데) 무중력 환경에서 혈관이 팽창해 얼굴이 부었지만 3일 뒤 지상(왼쪽)에서보다 얼굴형이 갸름해지며 ‘우주미인’으로 변했다(오른쪽). 사진 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얼굴이 계란형으로 더 예뻐졌나요? 키도 3cm 자랐어요.”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씨는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4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10일 동안 머물면서 잠깐 동안 ‘우주미인’으로 변했던 자신의 신체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 씨는 당시 무중력 상태에서 이마와 코가 앞으로 올라오고 턱이 ‘V’자형이 되면서 지구에 있을 때보다 얼굴이 갸름해졌다.》

끼 많은 알파걸서 소심한 맏언니로

우주에 다녀온 뒤 얼굴 외에도 달라진 점이 많다. 평범한 이공계 대학원생이었던 이 씨는 수개월 만에 길 가던 초등학생에게 사인 요청을 받는 유명인사가 됐다. 이 씨는 “가끔 TV에 ISS에서 둥둥 떠다니는 내 모습이 나와도 왠지 내가 아닌 것 같다”며 ‘우주인’과 ‘지구인’ 사이의 심리적 괴리감을 털어놓았다. ‘우주인’ 이 씨와 ‘지구인’ 이 씨는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 공인이 된 후 말-행동 조심스러워져

“우주인이 되고 나니 노래도 맘껏 못 부르겠더라고요.”

이 씨는 대학원 시절 활달하고 자기표현이 정확했다. 할 말은 하고 따질 건 따지는 시원시원한 성격 덕분에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노래방에서는 탬버린을 흔들고 춤을 추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우주인으로 선발된 뒤 이 씨는 “소심해졌다”는 얘길 종종 듣는다. 지난달 한 음악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 갔다가 이 씨를 알아본 관객들의 요청으로 무대에 올라가 즉흥적으로 애창곡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불러야했다. 대신 ‘우주인 스타일’로.

이 씨는 “공인이 된 뒤 말이나 행동이 많이 조심스러워졌다”며 “동생은 우주인을 언니로 둔 탓에 종종 불편을 겪는다”며 미안해했다. 그는 “여전히 ‘품위’를 더 갖춰 얘기하라고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 논리의 화신이 태극기만 봐도 눈물 ‘핑’

AIST에서 바이오시스템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이 씨는 ‘뼛속까지 공돌이’라고 불릴 만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이 강하다. 지난해 4월 8일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에 탑승할 당시에도 그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담담한 자세를 보여 탑승 우주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 씨는 “ISS에 도착한 뒤 수행해야 할 우주실험 임무를 생각하느라 설렘이나 만일의 사고에 대한 두려움 같은 감정에 빠질 겨를이 없었다”고 전했다.

쌓아둔 감정이 폭발한 것은 오히려 지구로 돌아온 뒤였다. 공항 입국장에서 가족을 만났을 때도 환한 미소를 지었던 이 씨는 집에서 편안히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하자 그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때 한국야구대표팀이 출전할 때마다 열심히 응원했다”며 “태극기만 봐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애국자가 됐다”고 말했다.

○ 밀려드는 강연에 강철체력도 바닥

이 씨는 우주인으로 선발될 당시 태권도 공인 3단에 수영과 농구를 좋아하는 스포츠 우먼으로 알려졌다. 우주인 선발 시험을 준비하던 당시 대학원 동료들은 “전국체전에 출전할 거냐”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강철’ 체력을 자랑했다. 빡빡한 연구실 일정 중에도 아침 수영 40분, 저녁 마라톤 1시간을 거뜬히 소화했다. 164cm 키에 58kg의 다부진 몸은 그렇게 다져진 셈. 우주인 훈련 과정에서 이 체력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귀환 후 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강의 요청에 지금은 체력이 바닥난 상태다. 지난해 5월 이후 초청강연만 98회를 소화했다. 이 씨는 “퇴근 후 지쳐 나가떨어지는 날이 많다”며 “모교인 KAIST 교정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게 유일한 운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중강연에서 자신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청소년을 만날 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열정적으로 변한다.

○ 스무 살 많은 美우주인과 ‘절친’

우주인이 되면서 이 씨는 외국 우주인과의 우정을 덤으로 얻었다. 그는 미국의 마이클 배럿 씨와 일본의 와카타 고이치 씨 등을 ‘절친(아주 가까운 친구)’으로 꼽았다. 이들은 ISS e메일 직통 리스트에 이 씨를 포함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대개 이 리스트에는 가족 등 최측근 몇 명만 포함된다.

그는 “배럿 씨는 스무 살이나 많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한 선배 같다”며 “요리를 좋아해 불고기 양념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와카타 씨와는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더욱 가까워졌다. 이 씨는 “일본의 모리 마모루 씨나 미국의 페기 윗슨 씨는 존경하는 우주인”이라며 “우주인 동료지만 대선배이자 닮고 싶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 “과학자 대신 우주외교관 꿈 키울래요”

“국제협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 씨는 우주인 선발 전 훌륭한 이공계 연구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지금은 ‘우주외교관’이라는 새로운 꿈을 품었다. 그는 “각 나라 우주인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다”며 “우주인들 사이에는 까마득한 ‘신참’인 내 의견도 충분히 고려하고 존중해주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10월 대전에서 열리는 ‘국제우주대회(IAC)’에 참여해 외국 우주 관계자들에게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 과정을 상세히 알리며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할 예정이다. 관심의 폭도 과학기술 전반으로 넓어졌다. 그는 “우주과학은 한 나라 과학기술을 평가하는 ‘토플’ 시험인 셈”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과학기술 정책이나 제도 전반을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훈련 이겨내고 원만한 관계 필요”… 우주인들 최대 덕목은 ‘人性’

우주인이 갖춰야 할 최선의 덕목은 뭘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최기혁 국제협력팀장은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첫 우주인 선발을 준비하던 2006년, 최 팀장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해 일본의 모리 마모루, 독일의 울프 메르볼트 씨 등 각국 첫 우주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들은 우주인의 최고 자질로 인성을 요구했다. 우주에 올라가기 전 힘든 훈련을 견디고 다른 나라 우주인들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우주에 다녀온 뒤 ‘영웅 심리’에 도취돼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에서는 ‘옥석’을 가리기 위해 시험관이 1주일 동안 지원자들과 합숙하며 물이 한 모금 남았을 때와 같은 극한상황에서 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해 평가에 반영한다.

최 팀장은 “우주인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상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종의 ‘로봇’인 셈”이라며 “조용하고 양순하면서도 영리하고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선발된 일본 우주인도 인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이소연 씨는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매우 훌륭한 우주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소연 씨 역시 “러시아 가가린센터에서 훈련받을 때 만난 우주인들은 하나같이 겸손했다”며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맞닥뜨리면 저절로 이런 자세를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