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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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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 여성이 골프장에서 동료들과 장갑을 끼면서 자기 왼손바닥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복점이 있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복점이 있으니 오늘 골프시합은 두고 볼 것도 없이 승리할 거라는 농담이었다.
마침 그 그룹에는 의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손을 보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복점의 주인은 어릴 때부터 늘 보아온 점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지만, 최근 수개월 동안 복점이 좀 커지는 것 같아 종합병원 피부과를 찾았다.
피부과의사는 큰 검은색 모반의 모양을 보고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일부조직을 떼어내 병리과에 조직검사를 의뢰했고, 병리과의사는 이 조직을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암의 일종인 ‘악성흑색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피부에서 주로 발생… 장기 등으로 퍼져 전이성 종양 형성해
악성흑색종은 피부에서 주로 발생하는 종양으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악성종양 중의 하나다. 이 종양은 표피층의 멜라닌 세포에서 생겨나 급속히 온몸, 특히 폐나 간 같은 장기에 퍼져나가 전이성 종양을 형성한다. 눈에 보이는 피부 외에 식도, 항문, 생식기, 눈의 망막 등에서도 드물게 발생한다.
병리의사는 현미경으로 피부 표피에서 비정상적인 멜라닌 색소세포의 증식을 확인하고 진단한다. 악성세포가 불어나 진피에 파고든 깊이와 옆으로 퍼진 상태에 따라 병기가 정해진다.
한국인에서 악성흑색종은 주로 발바닥, 발가락 사이, 손바닥, 그리고 손가락 사이에서 있던 반점에서 발생한다. 때로는 점이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고 지나다 서혜부나 겨드랑이 등의 림프절이나 몸통에 전이하여 발견되기도 한다. 유전적 소인, 화학적 발암물질이 원인으로 알려졌으며 햇빛에 과다한 노출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얼굴과 상체 등 노출 부위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유색인종보다 백인에게 많기 때문이다.
악성흑색종의 치료방법은 역시 외과적 수술이 최선이다. 병리과의 조직검사를 통해 조기에 발견한다면 외과적 치료만으로 완치할 수 있다. 약물요법 등도 개발돼 있다. 2006년 유전자 치료를 통해 악성흑색종을 치료한 사례도 있었으나 임상시험 결과여서 아직은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자기모양 바꾸는 변신의 귀재… 반점 등 있다면 병원 찾아 상담해야
악성흑색종은 피부암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이다. 어느 50대 남자는 고혈압으로 입원하였다가 발뒤꿈치에 있는 큰 반점을 제거할 것을 권유받았다. 젊을 때부터 있었던 점인데 무슨 큰 병이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수술을 거절하였는데, 몇 년 후 온몸에 흑색종이 퍼져 사망했다.
더구나 스스로 정상세포인 것처럼 위장해 항암화학요법을 피해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조건에 따라 모양을 바꾸고, 암의 특징 중 하나인 급속증식을 스스로 중지함으로써 정상적인 피부색소 세포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결국, 최초의 종양에서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동시에 급속성장하는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삼는 항암치료를 피해가기도 한다.
암세포의 변신능력은 세포 안에 들어 있는 MiTF 불리는 화학물질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물질은 세포의 유지, 증식, 분화와 전이를 조절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 물질이 줄어든다는 것은 암세포가 증식을 멈추고 모양을 바꿔 다른 곳으로 전이할 채비를 하는 셈이라고 한다.
얼굴에 나 있는 점은 그 사람의 인상을 좌우한다. 그 때문에 턱이나 볼에 있으면 복점이라 불리어 좋아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몸에 낯선 반점이 있나 두루 살펴보자. 혹시 발가락 사이나 손발톱 등 평소 눈여겨보지 않는 부위에 검은 반점이 있나 살펴보고, 머릿밑이나 등과 같은, 자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곳은 가족들과 살펴보자. 혹은 전부터 있던 점이 커지거나, 헐거나, 색깔이 변하거나, 모양이 바뀌면 신속히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진찰을 받아보자. 조금이라도 의심이 간다면 진찰한 의사는 병리과를 통해 조직검사까지 시행해 볼 것이다.
박재복 대구 카톨릭대학병원 병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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