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게시물로 돈벌며 책임은 회피… 포털 ‘맘대로 약관’ 제동

  • 입력 2008년 7월 21일 02시 52분


■ 공정위 6개 포털 개선조치 내용 - 의미

고객 글-개인정보 일방적 이용 무효… 손배소송 가능

소규모 사업자 아이디어 가로채 수익… 보상도 안해

IT업계 “관련 벤처 성장막는 인터넷경제 포식자”

6개 포털 “공정위판단 모두 수용… 9월말까지 시정”

공정거래위원회가 20일 웹 포털의 불공정약관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린 것은 그동안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외면했던’ 업계의 관행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포털은 최근 ‘언론 권력’, ‘인터넷 경제의 포식자’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지만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면서 소비자와 인터넷기반 벤처업체가 피해를 호소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정위 박도하 약관제도과장은 “이번 조치는 포털이 그동안 이용자 및 콘텐츠 제공업체와 체결한 약관 조항 상당수를 무효로 판정한 것”이라며 “다만 6개 포털을 운영하는 5개 사업자가 기존 약관을 개정하겠다고 밝혀 시정명령은 내리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기존에 맺었던 불공정 약관 조항이 무효가 되면서 관련 조항으로 피해를 본 이용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는 길도 열렸다.

○ 기존 불공정 약관 무효 판정

‘카페 회원이 타인의 저작권 등을 침해하였음을 이유로 회사가 제3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 고소 또는 고발 등의 당사자가 된 경우 카페 회원은 회사를 면책시켜야 하며, 회사가 면책되지 못한 경우 카페 회원은 그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합니다.’

한 인터넷 포털이 카페 회원과 맺은 약관이다.

그러면서도 포털은 회원이 올린 게시물을 일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약관을 소비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한 마디로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논리다.

포털의 ‘얌체 약관’은 이뿐이 아니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일부 포털은 사전공지 없이 불분명하고 포괄적인 사유로 기존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

포털의 책임으로 회원에게 구매캐시 등을 환불할 때도 포털이 이동통신사 등 결제대행사에 지불한 결제 수수료는 회원이 내도록 하고 있다.

서버 등의 관리부실로 회원의 캐릭터, 아이템, 사이버머니 등 사이버자산이 소실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손해배상 청구기간도 민법은 3년을 보장하고 있지만 포털은 3개월로 제한했다.

고객의 ID나 비밀번호를 잘못 관리해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도 일부 포털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얌체 짓’도 모자라 횡포까지

포털의 횡포는 이용자는 물론 인터넷 벤처기업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사업을 운영 중인 A사는 2년 전 포털 검색창에 ‘어버이날 문자보내기’ 광고를 싣는 아이디어를 내 하루 만에 조회수 40만 건, 회원 수 1000명을 기록하는 ‘대박’을 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포털이 하루 뒤 같은 아이디어의 광고를 A사 단독 광고 바로 아래에 게재했고 A사의 수익은 급감했다.

이와 관련해 포털의 약관은 ‘손해배상액의 한도는 광고주가 포털에 지불한 광고료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100만 원짜리 광고를 했다면 포털이 사업을 가로채도 최대 100만 원만 배상하면 된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이번에 이 부분에도 메스를 들이대 약관을 시정하도록 했다. 또 △포털의 동의 없이 경쟁사에 콘텐츠를 제공하면 계약금액의 20배에 이르는 과도한 손해배상을 물리거나 △계약을 해지해도 3개월까지 콘텐츠를 제공토록 하고 △포털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자의 거래를 포털이 일방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한 약관을 시정하도록 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포털은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의 성장을 막는 인터넷 경제의 포식자 노릇을 한 측면이 있다. 불공정한 약관이 그 근거가 돼 왔다”고 말했다.

벤처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나머지 인터넷 사업자에게도 불공정한 부분을 개선하라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포털 규제 강화 입법 추진도 잇따라

공정위 조치와 별도로 포털의 영향력 남용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방지하려는 정치권과 관계당국의 입법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은 이달 14일 ‘검색서비스사업자법’ 제정안과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같은 당 심재철 의원은 신문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김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검색사업자(포털)는 도로나 철도와 같은 기간망에 가깝고 인터넷 사업을 하는 사람은 포털과의 제휴 없이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최근 불공정 거래, 음란물 유포 등이 포털에서 벌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합리적 법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포털이 불법복제, 명예훼손 등 불법정보 삭제 명령을 듣지 않아도 처벌이 어려운 현재의 조항을 변경해 삭제 및 임시조치 불응 때 포털을 처벌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상습적으로 불법 저작물 유통을 반복하는 포털 사이트에 대해 폐쇄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 중이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서 시작해 저작권 등과 관련한 인식 수준이 낮고 포털의 책임이 명확하지 않았다”며 “이번 공정위 조치가 기준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6개 포털을 운영하는 5개 사업자들은 공정위의 판단을 모두 수용하고 9월 말까지 자진 시정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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