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근모]과학기술엔 역기능도 있다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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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과학기술 발전과 관련해서는 축제의 한 해라 하겠다. 100년 전인 1905년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20세기 물리학을 이끄는 세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수상대성 이론, 광전자 이론, 브라운 운동에 관한 젊은 과학자의 획기적 논문들은 물리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계 각국은 2005년을 ‘물리의 해’로 선포하고 각종 행사를 갖고 있다.

최근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개의 복제 성공으로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생명공학 업적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한국의 과학기술이 국제적인 첨단수준임을 선양하여 우리 국민에게 기쁨과 자긍심을 안겨 주었다. 앞으로 줄기세포 연구개발 및 복제기술의 발전으로 난치병을 치료하고 새로운 생명과학 의료기술이 실용화된다면 인류문명은 다시 한번 놀라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순기능뿐 아니라 역기능을 갖고 있다. 좋은 예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국가기관의 도청(盜聽) 사건이다. 일반 국민은 정부의 도청 고백을 바라보면서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 인권마저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국가 사회 지도자들이 숨기고 자행하고 있는 비도덕적이고 범법적인 행위에 대하여 절망까지 느끼고 있다.

앞서 언급한 과학기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가능성을 알게 됐지만 첫 원자력발전소를 지은 것은 1954년이고 실제로는 핵무기부터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나치 정권이 핵무기를 제조할지 모른다고 우려한 아인슈타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원자탄 제조를 건의했고 미국 정부는 이를 실전에 사용함으로써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일단 알려진 핵무기의 비밀은 엄청난 군비 경쟁의 핵심이 되었고 강대국뿐만 아니라 빈국까지도 핵무기 개발에 국력을 경주함으로써 인류는 핵 공포의 고통을 겪고 있다. 원자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지 60년이 되는 이때 우리는 과학기술의 역기능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최초의 원자탄 개발을 지휘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고뇌에 고뇌를 거듭한 끝에 수소탄 개발사업에 참여할 것을 거부하였고 이 때문에 ‘반국가적 과학자’라는 지탄을 받기도 하지 않았던가.

배아줄기세포 연구나 생물복제 기술의 발전과 확산도 적절하고 완벽한 통제가 없이는 엄청난 새로운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고 생명의 존엄성마저 파괴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이처럼 경제발전과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놀라운 추진력을 제공했지만 반면에 인류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도 던져 주었다.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헌신과 재능을 바탕으로 성취한 업적을 기뻐하면서도 우리의 지적, 도덕적 통제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통제 기능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위험 통제는 지식기반사회의 필수기능이기 때문이다.

국가 및 사회 지도자들은 단순 사고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시의적절한 의사결정과 예방조치들을 미리 강구해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국가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고 세계적인 협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한번 삶의 기본 목적을 재점검하고 충동적 욕심이 가지고 올 절망과 허구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공동선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21세기에는 진정 도덕적이고 건강한 사회건설의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100년 전의 아인슈타인과 최근의 배아복제 및 도청사건 등이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던지는 숙제다.

정근모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명지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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