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세포 서서히 죽인다

  • 입력 2004년 12월 9일 19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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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가 잘 안 되고 괜히 불안하며 심장 박동도 빨라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특히 만성적 스트레스가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고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는 많았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내막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최근 이런 내막이 세포 차원에서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세포가 더 빨리 늙고 심지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세포가 늙는다

“내가 너 때문에 속상해서 늙는다, 늙어.” 가끔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는 말이다. 미국과학학술원회보(PNAS) 7일자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말은 사실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정신의학과 엘리사 에펠 박사팀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일수록 세포 내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짧다는 점을 밝혀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끝부분으로 세포가 분열함에 따라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에 그 길이가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알려 준다. 결국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이 세포 차원에서 더 늙는다는 의미다.

심한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염색체의 끝부분인 텔로미어(노란색)의 길이가 더 짧아진다. 이는 세포 차원에서 더 늙게 된다는 뜻이다. 사진제공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여성 39명과 건강한 자녀를 둔 여성 19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혈액 샘플에서 얻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분석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어머니가 그렇지 않은 어머니에 비해 텔로미어의 길이가 훨씬 짧게 나타났다.

에펠 박사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사람의 세포가 평균 9∼17년 더 늙은 셈”이라고 추정했다.

● 산화 스트레스가 연결고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는 “에펠 박사팀의 연구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세포 수준에서의 노화를 연결시켰다는 점이 독창적”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심리적 스트레스가 어떻게 텔로미어를 더 짧게 만드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체내의 활성산소가 세포에 ‘산화 스트레스’를 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활성산소는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와 달리 불안정하고 산화력이 강하다.

뇌에서 각종 스트레스를 받을 때 콩팥 위에 있는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발생하고, 이 호르몬이 장기간 활성화될 때 산화 스트레스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밝혀져 있었다. 결국 이번 연구를 통해 심리적 스트레스가 산화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이것이 세포를 늙게 한다고 연결지을 수 있다.

● 뇌세포가 죽는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오랜 기간 받으면 세포, 특히 뇌 신경세포는 구조가 약화되고 심한 경우 죽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록펠러대의 브루스 맥웬 교수팀이 1999년 신경과학전문지 ‘애뉴얼 리뷰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한 내용. 연구팀은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은 쥐가 학습 및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관찰하고 이 쥐의 뇌를 단면으로 잘라 신경세포를 살펴봤다. 그러자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의 신경세포에서 뻗어 나온 가지의 수가 줄어 신경세포끼리의 연결 강도가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과학기술부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 프론티어 사업단’의 김경진 단장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신경세포끼리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결국 기억력이 떨어진다”며 “심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신경세포가 죽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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