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할머니의 도전!게임왕⑧]쓰러져도 게임이 좋아

  • 입력 2002년 9월 29일 17시 38분


고개가 제 무게를 못 이겨서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밤을 새운 게 며칠 째인지 세다 세다 까먹은 지 오래.

“쾅.”

천둥 같은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더니 제 머리가 크게 끄덕이다가 그만 키보드에 부딪히며 난 충돌음이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PC 전원을 끄고 방에 가서 잠을 자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어어어…” 소리를 내며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뿌옇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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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아들이 저를 부축해 방에 눕혔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계속 머리가 아프고, 결국엔 밤사이에 먹은 것까지 다 토해냈습니다. 뇌중풍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놀란 아이들이 119에 신고했고 저는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는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의사 간호사들이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이 점점 또렷해질 무렵 검사 결과나 나왔습니다.

“아니, 할머니가 무슨 일을 하시기에 이렇게 과로 하셨어요?”

젊은 의사양반이 차트를 뒤적이며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과로 정도가 아니었지요. 제 캐릭터 ‘한지희’의 레벨을 최고(1000)로 올리기 위해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웠으니까요. 몬스터 한 마리만 더 잡으면 700인데…, 몇 마리만 더 잡으면 800인데…, 세 마리만 더 잡으면 900인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최고레벨인데….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여서 몇 시간이 됐고 레벨 하나 하나가 쌓여 며칠이 된 것이었습니다.

10일을 병원에 누워있었어요. 그런데 차라리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하는 게 병원에 누워 쉬는 거보다 마음이 편한 거 있죠?

“어머니, 나이를 생각하셔야죠.”(아들)

“어머니, 애들이나 하는 게임을 하다 입원을 하시다니요?”(딸)

“장모님, 그나마 이만하시길 다행이에요.”(사위)

“잘 한다, 잘 해.”(남편)

시간만 나면 식구들이 병실로 와서 릴레이로 잔소리를 하는데, 정말 괴롭더군요.^^

퇴원을 하고, 다시 게임에 접속했습니다. 게임 친구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할머니,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라며 꽃씨 뿌리기 기능을 이용해 제 주위를 온통 꽃으로 장식해 줬습니다.

요즘요?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체력이 없으면 말짱 헛것. 매일 아침 수영을 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있답니다.^^

shyang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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