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할머니의 도전! 게임왕]깡패에게 맞고 기절하다

  • 입력 2002년 7월 21일 17시 38분


님∼ 안녕하세요? 제 온라인 게임 ID는 ‘아이부끄워라’에요. 할머니가 웬 ID냐고요? 웬 게임이냐고요? 그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이렇게 글을 쓰려니 진짜 좀 부끄럽네.. 〓^^〓

제 나이 올해 64세. 1년 반 전부터 울 할아버지(남편)가 정년퇴직하고 PC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말이 PC방 주인이지 소위 말하는 컴맹이었어요. 게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런데 지금은? 온라인게임 ‘레드문’(www.redmoon.co.kr)을 즐겨하는데 최고 레벨인 1000이랍니다. ㅋㅋㅋ (웃음소리 ‘크크’를 줄여 쓰는 게임용어)

처음에는 하루 종일 앉아 요금 받는 게 일의 전부였어요. 심심풀이로 한다는 게임이 고작 아들이 공개자료실에서 다운로드 받아준 ‘고스톱’ 정도였지요.

그런데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PC 앞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뭐가 좋은지, 혼자 낄낄거리기도 하고, 화도 내고. 게임에서 만난 사람과 실제 만나 사귀기도 하고, 삶의 희로애락이 게임 속에 다 있는 것 같더라고요.

용기를 냈어요. 게임을 하고 있는 손님에게 게임을 가르쳐 달라고 물었죠. 그런데 모두 “할머니, 고스톱이나 치세요”, 무시하더군요. 불끈, 오기가 생겼어요.

아들을 졸라 온라인 게임의 ID를 일단 만들고 봤어요. 그때 아들이 장난스럽게 붙여준 ID가 바로 ‘아이부끄워라’랍니다. 캐릭터는 마법을 잘 쓰는 귀여운 꼬마숙녀 ‘한지화’를 골랐어요. 짧은 치마에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제 젊었을 때 모습 같더군요.^^;

아들은 체력을 채우는 방법, 기술을 쓰는 방법 등 기본적인 조작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줬어요. 아들은 “게임상에서는 나이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대화가 좀 힘들 것”이라고 걱정하더군요. “걱정 마라. 여섯 살짜리 손자도 하는 걸 내가 왜 못하니?” 더 오기를 부렸죠.

역시 쉽지 않더군요. 한 마디로 몸 따로 마음 따로. 초보지역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가장 약한 몬스터인 ‘깡패’를 잡으면서 ‘체력 보충’하는 자판 글자를 치려는데, 허걱. 화면에 뜨는 글씨.

‘깡패에게 맞아서 기절 하셨습니다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뒤에서 구경하던 학생이 “것 보세요. 역시 할머니는 고스톱이라니까요”라며 놀려대는 것이었어요. ‘다시 시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수십 번 더 보고 나서야 차츰 마우스가 손에 익고 캐릭터를 움직이는 요령도 생기더군요. 처음에는 화만 났는데 게임에서 ‘깡패’ ‘날강도’가 무서워서 도망 다니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정말 오랜만에 꿈을 꾸었습니다. ‘깡패’ ‘날강도’ 캐릭터가 막 쫓아오고 저는 밤새도록 짧은 치마를 입고 깡충깡충 도망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게임 입문 성공. 그러나 게임은 단지 게임만은 아니더군요. 그게요….

양선희 shyang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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