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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13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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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최모군(17·강릉 모고교 3년)이 보낸 다급한 구조요청이 들어있었다. 더구나 최군은 98년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제작 유포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적이 있는 ‘천재 해커’여서 김 경사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장문의 e메일에는 “다른 사람의 강압으로 원하지 않는 해킹을 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수시로 휴대전화로 연락해오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방과 후 억지로 차에 태워 PC방에 데려간다”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팀이 즉각 가동됐다.
최군과 친구 김모군(17)이 해킹을 강요받기 시작한 것은 4월29일.
“컴퓨터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으니 한번 만나자”는 강원 모대학 4년 휴학생 박모씨(24·강릉시 내곡동)의 전화 연락을 받고 강릉의 모처에서 만난 이들은 120만원의 돈과 함께 해킹을 제의받았다.
온라인 게임사이트인 H게임의 포커, 고스톱 등 온라인 도박게임에 사용되는 사이버 머니를 현금을 받고 팔 수 있으니 이 회사의 시스템에 침입, 4경9200조원의 사이버 머니를 훔쳐오면 성공보수비로 30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박씨에게서 120만원의 착수금을 받고 유혹에 넘어간 최군 등은 5월4일부터 7차례에 걸쳐 강릉시의 PC방을 옮겨다니며 해킹을 시도했다. 하지만 H사가 해킹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은 낌새를 눈치챈 최군 등은 IP주소 역추적으로 자신의 신원이 파악될 것이 두려워 해킹 범행을 중단하고 박씨를 피하기 시작했다.
최군 등은 휴대전화를 꺼놓고 피해다녔지만 박씨는 사람들을 동원해 학교 교문을 나서는 최군 등을 강제로 차에 태워 PC방으로 끌고가 해킹을 지시하고 옆에서 감시하기도 했다.
한달여 동안 끌려다니며 죄책감을 느껴오던 최군은 5월30일 오전 1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며 경찰에 e메일로 신고했다.
경찰은 13일 박씨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사이버 머니를 인터넷 상에서 매매하려고 한 공범 노모씨(24·무직·부산 강서구) 등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자수를 한 최군 등은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향후 사이버 범죄는 단순히 기술을 가진 사람에 의한 범죄보다는 범죄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들을 고용하는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과거 해킹 등으로 검거된 전력이 있는 미성년자들이 성인범죄에 이용되지 않도록 주위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