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속의 의학]영화 '미믹'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8시 53분


유전자 조작기술이 21세기 인류에게 신이 내려준 선물이 될 지 악마의 저주가 될 지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과학기술은 신의 영역에 근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의 탄생과 사멸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이나 새로운 종의 탄생과 변종을 만드는 기술은 이제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미믹’에서 과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보다도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 흰개미와 사마귀의 유전자를 조작해 바퀴벌레의 천적을 창조해 낸다. 대신 이 새로운 종의 곤충은 생식이 불가능하도록 조작돼 있어서 바퀴벌레의 퇴치 후에는 스스로 멸종하도록 계획된 것이다. 이 방법은 살충제를 사용하지도 않고 인간에게 피해도 없으니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세계의 각광을 받는다. 그러나 3년 후 뉴욕의 지하철과 하수구에서 사람이 계속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던 중 범인은 바로 바퀴벌레를 없애도록 창조된 벌레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자동적으로 멸종하도록 계획된 벌레가 생존하고 번식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닮아가고 있으며 오히려 사람의 천적이 돼가고 있었다.

실험실 내에서 유전자조작에 의한 종의 변화는 어려운 일이 아니며, 또 짧은 기간 내에 가능하다. 그러나 실험실 밖의 자연계에서 몇 년 안에 종이 어떻게 변할지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 생태계에서는 다양한 종의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난 뒤 그 중 하나만이 주위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할 수 있을 뿐이다. 더구나 곤충이 사람의 지능을 가질 정도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수 억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내용처럼 유전자 조작이 성공한다 해도 사람의 천적이 가까운 시일 내에 생겨날 가능성은 없다.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유전자 조작이 어떻게 예기치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전자조작에 의해서 태어난 곤충은 일생주기가 짧으므로 번식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만약 생식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곤충이 변종으로 태어날 수는 있다.

이 새로운 변종이 곤충계의 먹이사슬에 어떠한 변화를 주느냐가 현실적으로는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생태계는 먹이사슬에 의해 불안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곤충계 내의 변화는 곤충을 먹이로 하는 작은 동물들의 분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는 다시 큰 동물의 생존과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곤충은 새로운 질병을 옮기거나 새로운 질병을 일으켜서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놈프로젝트와 유전자조작과 같은 신기술은 21세기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이 열쇠로 열린 판도라 상자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 지는 모를 일이다.

김형규(고려대의대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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