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소프트웨어산업(中)]불법복제 개발의욕 꺾는다

  • 입력 1998년 9월 9일 19시 05분


‘수천만원어치의 소프트웨어(SW)가 단돈 2만원.’

PC통신이나 인터넷에 들어가면 복제 CD롬을 판매하는 이런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CD롬 한 장에 ‘포토샵’ ‘유도라’ 등 신작 프로그램이 수십가지 들어 있다면 제값으로 쳐서 수천만원.

그러나 실제론 2만∼2만5천원에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정부 당국과 SW업체들이 수시로 단속을 벌이지만 시장에선 보란 듯이 불법 복제품이 판친다.

2년 전 통신프로그램 개발업체인 큰사람정보통신은 시판에 나서지도 않은 프로그램 ‘이야기7.3’ 수만카피가 PC통신에 퍼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시험판을 PC통신에 올린 것. 이 바람에 ‘이야기7.3’의 판매고는 이전 제품의 4분의 1 수준에도 못미쳤고 이때 후유증으로 큰사람정보통신은 아직도 타격을 입고 있다.

‘개발자들이 수년간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인 SW를 무단복제하는 것은 개발자들의 의욕을 꺾을 뿐만 아니라 산업발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시판중인 SW엔 예외없이 이런 문구가 표시돼 있지만 불법복제는 예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소프트웨어업체 S사 K사장의 토로. “몇달간 밤새워 만든 게임의 복사판이 바로 그 다음날 용산시장에 쫙 깔려 있는 것을 봤을 땐 눈에 피눈물이 나더군요. 이것도 이젠 만성이 돼 요즘은 무덤덤합니다. 차라리 매뉴얼(설명서)이라도 팔아 개발비나 건지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SW유통업계의 난맥상.

지난해부터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한국소프트 등 대규모 SW유통업체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연쇄적으로 도산했다. IMF로 수요가 꽁꽁 얼어붙은데다 유통업체간 과당경쟁으로 산업 자체가 고사위기에 몰려 있는 것. 이 때문에 아무리 좋은 SW를 개발하더라도 시장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사장되는 사례가 비일비재다.

유명 SW를 헐값에 PC회사에 대량 공급하는 ‘번들(묶음)판매’ 역시 문제다. 개발사로서는 연간 1백만대가 넘는 대기업 PC시장만 잘 공략하면 매상이 불고 이용자도 늘기 때문에 번들판매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그러나 10만원이 넘는 SW를 PC업체들은 단돈 수백∼수천원에 후려치기 때문에 이익을 남기기 힘들다. 소비자도 PC만 사면 수십가지의 SW가 딸려오기 때문에 ‘SW는 역시 공짜’라는 인식을 처음부터 갖게 마련.

소비자들도 할 말이 없지 않다.

이들은 “돈을 주고 사고 싶지만 SW 가격이 턱없이 비싸고 제대로 된 제품인지 검증하기 힘들다”고 항변한다.

이와 관련, 최근 소프트웨어업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글과컴퓨터사는 지난달부터 4만∼5만원에 유통되던 ‘아래아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연회비 1만원을 받고 판매, 전에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큰사람정보통신도 ‘이야기7.7’의 판매가를 개당 6천6백원까지 낮춘 결과 단숨에 10만카피 이상을 팔았다. 이전 버전인 ‘이야기7.5’는 11만원이었다.

회사원 정태환씨(27)는 “이젠 정품을 사도 예전처럼 비싼 값에 제품을 구입하고 나서 ‘본전생각’을 하지 않게 돼 좋고 떳떳하다”고 말했다.

〈정영태기자〉ytc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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