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세대의 사이버 사운드]「테크노」볼륨을 높여라

  • 입력 1997년 10월 10일 08시 03분


전자 사운드가 국내 대중음악계에 울리고 있다. 이른바 테크노 바람. 신시사이저 컴퓨터 시퀀서 리듬머신 등 전자 사운드의 미학을 추구하는 장르. 리듬의 변형과 반복, 일그러진 효과음, 멜로디의 극소화 등이 특징인 테크노는 기존 음악의 문법을 송두리째 부정한다. 테크노의 맨 앞줄에 선 이는 지금은 해체된 「삐삐밴드」의 보컬 이윤정. 파격적인 노래와 도발적 무대 연출을 보였던 이윤정은 솔로 첫 음반 「진화」에서 테크노 사운드를 들고 나왔다. 그룹탈퇴후미국 뉴욕에서 열달쯤 보내는 동안 테크노가 「신세계」로 다가왔다는 것. 『듣는 순간 멍해졌어요. 무의식의 세계가 무한으로 확장되는 기분, 상상력이 마구 자극되는 기분, 무언가에 세뇌당하는 기분, 뭐 이런 거였어요』 테크노에 대한 화려한 상상을 실제로 옮겼다. 도움을 준 이는 비디오 아트와 전위예술을 공부하고 있는 오세준씨. 수록곡 11곡 가운데 8곡을 오씨가 작편곡했다. 음반의 내용은 흔한 공상과학(SF) 이야기다. 인조인간 사이보그가 태어나 스스로를 자각하고 인간에게 도전, 사이보그의 세상을 만든다. 「깸」 「진화 2500」 「산소가 필요해」 「궤도」 「력(力)」 「자유인」 등의 노래들은 사이보그의 탄생과 갈등, 자유에 관한 서사적 구조다. 테크노 사운드는 이제 PC와 인터넷 공간에서 개인적 자유를 만끽하는 사이버 세대의 공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마치 전자 세계의 소리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별세계의 언어라는 듯. 하이텔의 소리모꼬지 등 PC통신 음악동호회에서는 테크노를 별도 장르로 다룬다. 아직 표면 위로 오르지 않은 국내 테크노 그룹 「타나토스」 「디지탈 드림」의 음악과 감상평도 서로 나누며 낯선 해외 테크노 뮤지션들의 이름과 음반이 나열되어 있다. 가수들 중에는 「삐삐롱스타킹」의 강기영이 요즘 테크노에 푹 빠져있다. 그는 이윤정의 음반 수록곡 「궤도」를 작곡했고 이달말경 직접 테크노 음반을 낼 예정. 「주주클럽」도 새 음반 「라니싸니싸파」에서 록을 바탕으로 테크노 사운드를 접목시켰다. 신시사이저로 기타가 낼 수 있는 소리를 모두 냈다. 한국에서 테크노는 지금까지 댄스 음악으로만 알려져온 게 사실. 그러나 이는 테크노의 변종에 불과하다. 컴퓨터를 사용해 노래를 만든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테크노 사운드가 아우르는 범주는 록 힙합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팝평론가 이종현씨(24)는 『테크노는 기계를 빌려 표현한다는 것일 뿐 아티스트의 뿌리가 어디냐에 따라 지향하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댄스에서도, 펑크 록에서도 테크노 사운드는 쏟아진다 〈허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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