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옷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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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이번 주는 한파가 예상되니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이맘때면 신문 방송에서 심심찮게 접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옷깃을 여미다’와 추위는 별 관련이 없다. ‘여미다’는 ‘옷깃 따위를 바로 합쳐 단정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즉 흐트러진 차림을 반듯하게 매무시할 때 쓰는 말이다. 추울 때는 옷깃을 세워야 한다.

언중이 즐겨 쓰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도 재미있다. 옷자락이나 옷소매는 스치기 쉽지만 옷깃은 일부러 끌어안기 전에는 스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누구도 이 말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굳어진 말은 ‘상징성’을 갖게 되면서 논리를 넘어선다고나 할까.

‘소맷깃’도 잘못 쓰는 낱말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옷깃에 이끌려 옷소매에서 손이 나올 수 있게 뚫려 있는 부분을 ‘소맷깃’이라 한다. 소매와 깃이 합쳐지면서 사이시옷이 들어간 꼴이니 형태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는 ‘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깃은 ‘옷깃’의 준말이고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한 부분’이나 ‘양복 윗옷의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즉 옷깃은 윗옷에만 있지 소매 쪽에는 없다. 바른 낱말은 ‘소맷귀’다. ‘소매’와 두루마기(또는 저고리)의 섶 끝부분을 뜻하는 ‘귀’가 합쳐진 말이다.

‘깃’에는 다른 뜻도 있다. 외양간 마구간 닭둥우리 따위에 깔아주는 짚이나 마른풀도 깃이다. 물고기가 많이 모이도록 물속에 넣어 두는,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나 풀포기 따위를 ‘고깃깃’이라 하는데 이를 줄여 깃이라고도 한다. 때가 잘 타는 이불의 위쪽이나 베개의 겉에 덧대는 천을 가리키기도 한다. 옛날에는 보금자리나 소굴(巢窟)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호주머니도 묘한 낱말이다. ‘호(胡)+주머니’ 구조다. 원래 주머니는 물건을 넣고 아가리를 졸라매서 차는 것이었다. 그 후 주머니를 옷에 달아 만들면서 중국식 주머니란 뜻으로 ‘호주머니’라고 했다. 만주족의 호복(胡服)에는 주머니가 있었지만 우리 한복과 수의(壽衣)에는 지금도 주머니가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은 저승에 갈 때는 재산을 갖고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찌됐든 호주머니의 황해 방언인 ‘더부치’가 입길에서 멀어져 가는 건 못내 아쉽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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