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64>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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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편 패왕 항우는 태공(太公) 내외와 여후(呂后)를 한왕 유방에게 돌려보낸 다음 날로 군사를 거두어 동쪽으로 떠났다. 그때 초나라 군사는 형양에 있던 종리매의 대군까지 끌어와 겉으로는 10만을 일컫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5만 남짓했다. 그나마 시양졸(시養卒)에 행궁(行宮)의 시중이 또 1만 명에 가까웠다. 남장(男裝)을 한 우(虞)미인이 패왕의 군막에 함께 기거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초나라 군사의 긴 행렬이 반나절이나 걸려 광무산을 벗어나자 패왕은 그때껏 군중에 데리고 있던 후공을 불러오게 했다.

“과인이 그대를 군중에 머물게 한 것은 결코 태공이나 여후에 갈음하는 볼모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대는 한왕의 사람이지만 과인을 밝게 깨우쳐 주고 어려움에서 건져냈다. 우리 초나라가 다시 크게 기세를 떨치게 되고 마침내 과인이 천하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 그대의 가르침 덕분이다. 하나 그대의 주인인 한왕은 다를 것이다. 당장은 부모와 처자를 되찾은 기쁨으로 그대에게 재물과 벼슬을 내리겠지만, 뒷날 그대가 오히려 과인을 깨우쳐 어려움에서 구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두고두고 그대를 미워할 것이다. 어떠냐? 한왕에게 돌아가지 말고 차라리 과인과 초나라를 위해 그 능란한 언변과 빼어난 주책(籌策)을 펼쳐보지 않겠는가?”

패왕이 그렇게 달래자 후공이 어둡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신에게 감사하기에는 이릅니다. 여기서 팽성까지는 1500리가 넘는 길, 대왕께서는 외로운 군사를 이끌고 적지(敵地)나 다름없는 그 먼 길을 헤쳐 나가셔야 합니다. 거기다가 이미 한신의 군사가 하비(下비)에까지 이르렀다 하니, 대왕이 이르실 때까지 팽성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하늘만이 아실 것입니다. 저는 다만 대왕의 과분한 지우(智愚)만 가슴에 새겨 길이 간직하겠습니다.”

그 말에 패왕도 가슴이 섬뜩해 더는 후공을 붙들지 않았다. 그길로 후공을 한나라 진채로 돌려보내면서 좋은 말과 많은 금은을 내려 고마워하는 뜻을 드러내려 했다. 후공이 이번에도 어두운 웃음으로 사양하며 말했다.

“이 또한 신이 감당할 수 없으니 다만 대왕의 두터운 정만 거두어들이겠습니다.”

그리고는 늙은 말 한 마리만 얻어 타고 한나라 진채로 돌아갔다.

후공을 보낸 패왕은 곧 계포를 불러 말하였다.

“장군에게 날랜 군사 1만을 떼어줄 터이니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달려 팽성으로 돌아가시오. 가서 주국(柱國·항타)을 도와 팽성을 지키되 과인이 이를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오.”

아무래도 팽성을 지키는 종질 항타가 못미더운 듯했다. 계포가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다시 종리매를 불러 말했다.

“장군은 군사 5천을 이끌고 인근을 뒤져 곡식을 거둬들이도록 하시오. 이제부터 팽성으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가 먹을 군량은 그때그때 민가에서 거둬들여야 할 것이오.”

그만큼 초군(楚軍)은 군량이 급했다. 달포 전 계포가 싣고 온 군량 3천곡(斛)은 이미 바닥을 보여 대군이 한두 끼를 때울 양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조참과 관영이 팽성을 위협하고 있어 팽월에게 빼앗길 위험을 무릅쓰면서라도 군량을 보낼 여유조차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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