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63>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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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하지만 한왕 유방은 천하를 차지하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 부모처자를 지푸라기보다 못하게 여긴다. 지난번에도 저희 부모를 삶아 죽이겠다고 겁을 주며 항복을 권해 보았으나, 유방은 되레 과인에게 아비 어미를 삶은 국물이나 한 그릇 나눠 달라며 야유만 보냈다.”

“그것은 한왕이 비정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왕이 항복했다고 해서 대왕께서 과연 한왕의 부모처자를 돌려주고 한왕을 살려 두셨겠습니까? 항복해 봤자 양쪽 모두 죽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왕은 오히려 부모처자를 하찮게 여기는 척함으로써 양쪽을 모두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화평을 맺고 서로 군사를 물려 돌아가는 것이라, 자신도 살고 부모처자도 구하는 길이 되는데 한왕이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후공이 그렇게 말하자 패왕 항우도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사람이 달라진 듯 무겁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이 보니 그대는 틀림없이 한왕이 보낸 사자이다. 간과(干戈)를 맞대고 있다 해도 사자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는 법, 그대는 잠시 객사(客舍)에 머물며 과인의 결정을 기다리라.”

그리고 한 식경이나 홀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후공을 불러들이게 했다.

“돌아가 한왕에게 전하라. 초나라와 한나라는 화평을 맺고 홍구(鴻溝)로 천하를 나누어 앞으로는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또 태공(太公) 내외와 여후(呂后)는 우리가 동(東)광무를 내려가는 날 돌려보낼 터이니 그대를 보내 바꾸어 가라고. 그리고 그대도 알라. 만일 한왕이 터럭만큼이라도 약조를 어기면 그대는 바로 임치성의 역이기 꼴이 날 것이다.”

패왕은 그런 말과 함께 후공을 한왕에게로 돌려보냈다. 그때 패왕을 그와 같은 결정으로 몰아간 것은 후공이 말한 대로 패왕을 도와주러 올 우군이 없는 데다 서광무의 군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걱정은 한신의 대군이 초나라로 밀고 드는 일이었다. 패왕은 조참과 관영의 군사를 제왕(齊王) 한신의 별대(別隊)로만 보고 있었다.

후공이 한군 진채로 돌아가 화평이 이루어진 것을 전하자 한나라 장졸들은 아래위를 가리지 않고 환성으로 그 일을 반겼다. 육고를 비롯한 막빈들도 후공의 유세 수완에 진심으로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한왕만은 왠지 기뻐할 할 수만은 없었다.

“저잣거리의 흥정에서는 양쪽 모두가 이문을 남기는 수가 있지만, 싸움터에서는 양쪽 모두가 이기는 법이 없다. 병진을 오가는 사자의 교섭도 싸움의 일부인데, 이번에 후공이 성사시킨 것은 양쪽 모두가 좋아하니, 후공은 패왕과 과인 중에 누군가를 속이거나 우리 둘 모두를 속이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를 평국군(平國君)에 봉하지만, 그의 능변은 자칫 그가 거처하는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공에게 상을 주고 작위를 내리면서도 그렇게 마뜩지 않은 심사를 드러내었다. 그 말이 귀에 들어간 것인지 하루아침에 제후에 오른 후공도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화평의 약조를 다짐하며 서로 사자가 오가는 며칠 사이에 8월이 다하고 9월로 접어들었다. 패왕이 마침내 사자로 온 후공을 초나라 군중에 남기고 태공 내외와 여후를 한왕에게로 돌려보냈다. 태공 내외와 여후가 수레를 타고 한군 진채로 돌아오자 한나라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한왕도 맨발로 달려 나가 태공 내외를 맞고 눈물로 불효한 죄를 빌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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