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00>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9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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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바람(11)

“그렇게 닷새만 적을 괴롭히면 적은 틀림없이 군사를 나누어 우리를 뒤쫓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지정한 곳에 다시 모여 집중된 힘으로 적의 중군(中軍)을 짓밟아 버리자. 이미 여러 갈래로 군사를 나누어 보낸 뒤라 적의 중군은 그리 많은 병력을 지니고 있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힘을 다해 들이치면 반드시 쳐부술 수 있다!”

팽월의 장수들은 그 말을 잘 알아들었다. 이미 진나라 시절부터 그렇게 싸워 수많은 대군을 물리쳐온 그들이었다.

소공 각의 대군과 유군(遊軍)으로 분산된 팽월의 작은 부대들이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그 이틀 뒤부터였다. 팽월은 진작부터 대량(大梁) 근처의 마제산(馬蹄山)을 숨을 곳으로 삼고 밀려들어오는 소공 각의 초나라 대군을 요격하기 시작하였다. 한껏 몸을 가볍게 한 몇백 명이 초나라 대군의 꼬리나 뒤처진 부대를 매섭게 후려치고는 빠른 바람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방식이었다.

사흘 내리 그런 싸움으로 적잖은 피해를 본 소공 각은 마침내 군사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팽월의 작은 부대들을 뒤쫓게 했다. 그게 바로 팽월이 기다린 바였다.

닷새 뒤 마제산 골짜기에서 가만히 병력을 집중한 팽월은 5000명도 남지 않은 초나라 중군을 벼락같이 들이쳤다. 갑자기 세 배가 넘는 팽월군의 기습을 받은 소공 각의 중군은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가까이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급히 구원을 왔으나, 결과적으로는 3만의 군사를 몇천 명씩 쪼개 차례로 투입한 꼴이라, 집중되어 2만에 가까운 팽월의 대군을 물리칠 수 없었다.

팽월이 소공 각의 대군을 크게 쳐부숨으로써 항우를 향해 부는 맞바람은 이제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전영이 일으킨 맞바람만 해도 제나라의 내분(內分)과 비슷한 데가 있어 그리 강렬한 인상으로 제후들의 눈과 귀를 끌지 못했다. 그런데 팽월은 바로 패왕 항우가 믿는 장수 소공 각에게 딸려보낸 초나라 대군을 여지없이 쳐부순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맞바람도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전영 팽월에 이어 움직인 것은 하수 물가에서 낚시와 사냥으로 세월을 보내던 전 조나라 대장군 진여(陳餘)였다.

패왕이 관중에서 제후들에게 천하를 나누어줄 때 조나라 승상 장이(張耳)를 상산왕(常山王)으로 봉하자 진여를 높이 치는 사람들이 패왕에게 말하였다.

“진여는 장이와 똑같이 조나라에 공이 있습니다. 진여도 마땅히 왕으로 봉해야 합니다.”

그러나 패왕은 진여가 함곡관 안으로 따라오지 않아 세운 공이 적다는 핑계로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만 진여가 남피(南皮)에 있다는 말을 듣고 부근의 세 현(縣)을 식읍으로 내주었을 뿐이었다. 또 장이와 진여가 세운 조왕 헐(趙王 歇)도 공이 적음을 들어 대(代)땅으로 옮겨 왕으로 봉했다.

“장이와 진여는 세운 공이 같은데, 장이는 왕이 되고 진여는 후(侯)에 그친 것은 항우가 공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여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때부터 항우에게 이를 갈아왔는데 이제 항우를 향한 맞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따르는 장동(張同)과 하열(夏說)을 가만히 제왕 전영에게 보내 달래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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