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99>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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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의 말을 믿지 않던 패왕도 삼제(三齊)가 차례로 전영(田榮)의 손에 떨어지자 전영의 모반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팽월의 군사들이 코앞인 양나라 땅까지 내려오자 비로소 손을 썼다.

“아부(亞父)께서 공연히 사람을 의심하는 통에 멀리 파촉 한중 땅과 한왕(漢王) 유방을 살피느라 우리 초나라로 보아서는 등짝이나 다름없는 삼제 땅이 전영의 손에 통째 떨어지는 걸 구경만 하였소. 장량의 말대로 한왕이 잔도(棧道)를 불사른 것은 다시 동쪽으로 돌아올 뜻이 없음을 드러낸 것임에 틀림없소. 눈앞의 우환거리인 제나라를 먼저 쳐 없애야겠소!”

먼저 범증을 불러 그렇게 말한 뒤에 다시 맹장으로 이름을 높여가고 있는 소공(蕭公) 각(角)을 불렀다.

“장군은 군사 3만을 데리고 지금 당장 양(梁)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날뛰는 팽월이란 자를 죽이고 그 목을 가져오라. 또 그 무리는 단 한 명도 살리지 말고 모두 땅에 묻어 뒷날의 본보기로 삼게 하라. 듣기로 팽월은 제나라의 대장군이라 하나, 원래는 거야택 물가에서 도둑질하던 무리의 우두머리였다고 한다.”

범증도 패왕에게는 당장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패왕이 적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소공 각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하지만 도둑질도 도(道)가 있어 오래되면 무르익는 법이오. 팽월은 수십년 도둑질로 늙고 닳아빠진 데다 거느린 군사까지 2만이나 된다 하니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되오.”

“군사(軍師)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듣겠습니다. 살피고 삼가 반드시 팽월의 머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소공 각은 그렇게 말하고 물러났으나 그 마음은 이미 팽월을 잔뜩 깔보고 있었다.

(거야택에 자리 잡고 텃세 삼아 좀도둑질이나 하던 약아빠진 늙은이가 어쩌다 흘러 다니는 백성들 몇 만 긁어모았다고 해서 너무 날 뛰는구나. 거록에서 함양까지 만리를 시체더미를 헤쳐 가며 싸운 우리 초나라 군사들에게 영문 모르고 죽어갈 그 졸개들이 불쌍하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군사 3만을 급하게 몰아 양(梁) 땅으로 달려갔다.

소공 각이 3만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문은 누구보다도 적의 움직임을 살피는 데 밝은 팽월의 귀에 곧 들어갔다. 지금까지 들판에서 진세를 펼치고 정면으로 승부를 보는 싸움보다는 작게 나뉜 군사들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바람같이 치고 빠지는 싸움에 재미를 보아온 팽월이었다. 이번에도 정면으로 맞서 좋을 게 없다 여기고 재빠르게 치고 빠지는 싸움으로 몰아갔다.

처음 팽월이 군사를 일으킬 때 따라나섰던 거야택 부근의 소년들 대부분이 그새 어엿한 장수로 자라 있었다. 팽월은 그들과 새로 얻은 장수 몇 십명을 불러 놓고 말했다.

“적병은 함곡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역전의 용사들로 이루어진 대군이며, 그 대장 소공 각은 항우 밑에서도 쳐주는 맹장이다. 정면으로 맞서봤자 승산이 없다. 이제부터 장군들은 각기 오백명씩 거느리고 한 덩이가 되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괴롭힐 수만 있으면 적을 괴롭혀라. 하지만 언제나 탈 없이 빠져 나갈 길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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