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89>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6월 27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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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王이 되어(12)

“병법도 크게 보면 사람을 부리는 것이라 들었소. 공은 사람을 얼마나 부릴 수 있소?”

“그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날랜 군사 만명이면 나라를 지키고 십만이면 제후를 호령하며 백만이면 천하의 형세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신이 그렇게 시원스레 대답했다. 조금 전에 잡스런 죄목으로 목이 잘릴 뻔한 사람 같지 않은 호기였다. 하후영은 그런 한신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그 재주가 남다르다는 것은 넉넉히 알 수 있었다. 훌륭한 인재를 얻게 된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곧바로 한왕의 처소를 찾아가 한신을 다시 천거했다.

“그라면 알고 있다. 여러 날 전에 번(樊)장군이 이미 내게 천거하였는데,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 신통치 않아 연오(連敖)로 일하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일도 못 견뎌 죄수로 목을 잃을 뻔한 자가 무슨 기이한 재주가 있겠느냐? 언변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책상물림일 것이다.”

한왕이 그러면서 여전히 한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가 하후영이 두 번 세 번 그의 재주를 치켜세우자 못 이긴 듯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치속도위(治粟都尉)를 맡겨보자. 군사를 잘 부리자면 잘 먹일 줄부터 알아야 하고, 잘 먹이자면 군량부터 잘 되질할 줄 알아야할 것이다. 장수로 쓰고 아니 쓰고는 그 다음에 정할 일이다."

치속도위는 군대의 곡식과 재화를 맡아보던 치속내사(治粟內史)에 속한 벼슬아치였다. 낭중이나 별반 나을 게 없는 자리였으나 그때 치속내사를 겸하던 승상 소하(蕭何) 밑에 들게 되었다는 것이 한신의 운세를 바꾸어 놓았다.

하후영은 한신을 치속도위로 삼으라는 한왕의 명을 받아내자 몸소 승상 소하를 찾아가 한왕의 명을 전하고 한신을 소개했다. 도필리로 오래 사람과 물자를 다루어온 소하는 한눈에 한신의 비범함을 알아보았다. 바로 자기 곁에 두고 밤낮으로 그 재주와 학식을 떠보았다.

“공은 나처럼 우리 대왕이 파촉 한중에서 힘을 기르면 서초패왕과 천하를 다투어볼 수 있다고 하셨다고 들었소. 하지만 관중에 삼진(三秦)의 왕이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그들은 어떻게 하시겠소? 더구나 장함은 진나라에서 으뜸으로 치던 장수였고, 사마흔과 동예도 저마다 그 꾀와 재주로 이름난 장재들이니, 그 셋이 힘을 합치면 관중은 철옹성을 두른 것보다 더 깨뜨리기 어려울 것이오.”

한번은 소하가 한신에게 걱정삼아 그렇게 물었다. 한신은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 셋은 진나라의 자제 수십만을 관동으로 끌고 가 모두 잃고 아무도 데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특히 신안에서 패왕에게 생매장당한 항병(降兵)들의 부모형제는 그들 세 사람의 고기를 산 채 씹지 못하는 게 한이니, 아무리 관중 땅이라지만 그런 백성을 데리고 그들이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그렇게 소하를 후련하게 해주었다. 다시 여러 날이 지나 한신의 비범함을 온전히 믿게 된 소하가 한왕을 찾아보고 그 재주와 학식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이번에는 소하가 말해도 한왕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뒷날 두 사람이 맞게 될 불행한 결말이 어두운 예감으로 닿아와 한왕을 그토록 주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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