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96>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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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칼과 영광- 鋸鹿의 血戰(4)

군(秦軍)이 한군데로 힘을 모으니 옛날 천하를 하나로 아우를 때의 기세가 엿보입니다. 오늘 장군의 범 같은 위엄과 8천 강동(江東) 자제들의 분투가 없었다면 우리도 끝내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범증이 그렇게 말해놓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어갔다.

“먼저 적이 집중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아야 합니다. 오늘은 제후군(諸侯軍)들이 다시 겁을 먹고 누벽(壘壁) 뒤로 숨어드는 바람에 적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고, 따라서 적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전혀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후들의 군사도 눈과 귀가 있어 우리의 승리를 보고 들었을 것입니다. 제게 날랜 호위군사 수십 기(騎)만 딸려 주신다면 오늘밤 안으로 한 바퀴 제후군의 진채를 돌며 달래보겠습니다. 그들이 저마다 누벽 뒤에서 나와 진세(陣勢)라도 그럴 듯하게 벌여준다면, 왕리도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나누어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의 집중이 느슨해졌을 때, 우리가 오히려 집중하여 적의 정면을 들이치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경포가 일어나 말했다.

“무신군(武信君=항량)께서 살아 계실 때부터 저와 여기 이 포(蒲)장군은 별장(別將)으로 본군과 떨어져서 싸운 적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따로 떨어져 나가 이 싸움의 전기(轉機)를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항우가 그렇게 묻자 경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오늘 싸움에서 섭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적이 이곳으로 집중했다고는 하나 전력을 모아 오지는 못했음을 말해줍니다. 본진을 뒤에 두어 거록성(鋸鹿城) 포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우리와 싸우려는 듯합니다. 따라서 섭간에게 본진을 맡긴 듯한데, 저와 포장군이 가서 그곳을 들이치면 어떻겠습니까? 반드시 이기지는 못한다 해도, 왕리의 등 뒤를 불안하게 만들어 군사(軍師)께서 걱정하신 적의 집중을 방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좋소. 두 분 장군은 꼭 이기려고 하실 것 없소. 작은 군사를 거느리고 가만히 적의 본진으로 다가가 숨어 있다가, 왕리가 거느린 주력이 떠나거든 불시에 덮쳐 불살라 버리시오!”

경포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항우가 그렇게 받았다. 그런 그의 얼굴은 하루종일 피를 뒤집어쓰고 싸움터를 내닫던 사람 같지 않게 환했다.

“군사와 당양군께서 좋은 계책을 내 주셨으니, 나도 한마디 하겠소. 싸움이 언제나 그러하지만, 내일 싸움은 특히 뜻 깊은 것이 될 것이오. 이기지 못하면 진나라를 쳐 없애고 초나라를 되일으키려는[滅秦興楚] 장한 행진은 여기서 끝나고, 거록성 남녘 들판은 우리 무덤이 될 것이오.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는 구차하게 따라야할 병법이 없고, 삼군(三軍)과 오병(五兵)의 구분도 없소. 장수와 사졸이 따로 없으며 문무(文武)의 직분도 없소. 그저 한 덩이가 되어 커다란 도끼처럼 적의 한가운데를 쪼개 이기는 것뿐이오. 적의 집중을 우리의 투지로 무력하게 만들고, 적장을 죽여 적의 머리를 없앰으로써 단번에 승패를 결정 짓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 될 것이외다. 여러 장수들은 오직 죽는 것이 바로 살 길이 된다는 믿음으로 내일 싸움을 이끌어 주시오!”

항우는 그런 말로 논의를 끝내고 장수들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비장한 것은 초군만은 아니었다. 그 싸움이 지닌 의미는 왕리와 섭간도 잘 알고 있었다. 다음날 일찍 대군을 몰고 본진을 떠나면서 왕리가 섭간에게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장군과 내가 전군(全軍)을 들어 적을 짓뭉개 놓고 싶지만, 이제 와서 거록성의 포위를 풀어줄 수는 없소. 지금까지 힘들여 에워싸고 있었던 보람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성안에서 되레 치고 나오면 더 큰일이오. 어제처럼 장군은 본진에 남아 성을 에워싸고 계시오. 그러나 내가 어제 꺾인 군사를 다시 채워서 나가게 되면 여기 남는 군사가 1만이 안되니, 장군은 굳게 지킬 뿐, 함부로 싸우지 마시오. 내가 죽기로 싸워 오늘은 결판을 내겠소!”

그리고는 초나라 군사들이 진세를 벌이고 있는 벌판으로 10만이 넘는 대군을 몰아갔다.

왕리의 대군이 밀려오자 항우의 군사들은 전군(前軍) 후군(後軍), 좌익(左翼) 우익(右翼)과 문무의 직급, 장수와 병졸을 가리지 않고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 나왔다. 그리고 장수끼리 이름을 묻는 절차조차 없이 바로 치고 들었다. 양쪽 모두 밤새 각오를 다지고 채비를 갖춘 뒤에 벌인 터라 이내 그 이전의 어떤 때보다 끔찍한 싸움이 벌어졌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그 싸움의 양상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이때 초나라 군사들은 제후군 가운데 으뜸이었으니, 거록을 구하고자 달려온 제후군이 여남은 진영이나 되었으나 진군(秦軍)이 두려워 감히 함부로 군사를 움직이지 못했다. 초군(楚軍)이 나서서 진군을 들이칠 때에도 제후군의 장수들은 모두 자신의 진채에 숨어 싸움을 구경만 할 뿐이었다. 초나라 군사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혼자서 진병(秦兵) 열 명을 당해낼 정도로 용맹했으며, 그 고함소리는 하늘을 떨쳐 울리는 듯했다. 구경하는 제후군의 장졸들 치고 그런 초군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되자 머릿수가 절반밖에 안되면서도 초군이 차츰 우세를 드러냈다. 거기다가 용기를 얻은 제후군이 머뭇머뭇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형세는 드러나게 초군 쪽으로 기울었다.

후군이 움직이자 왕리는 싸움의 전면(前面)을 넓혀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만큼 진군의 병력집중은 느슨해지고 초군의 공격은 더욱 맹렬해졌다. 그게 다시 제후군을 격려해 마침내는 진채를 뛰쳐나와 싸움을 거드는 이들도 생겨났다. 어떤 기록에는 병력이 적은 항우가 오히려 왕리를 포위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제후군이 모두 자신들의 진채에서 뛰쳐나온 뒤의 일을 적은 듯하다.

하지만 진군을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지게 한 일은 따로 있었다. 왕리가 밀리면서도 어렵게 버텨내고 있는데 갑자기 졸개 하나가 서북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장군, 큰일 났습니다! 본진에 무슨 변고가 생긴 듯합니다.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왕리가 돌아보니 정말로 그랬다. 본진이 당했다면 뒤로도 적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앞둔 초군 만으로도 이미 당해내기 어려운데 다시 등 뒤에서 누군가 오고 있다고 생각하자 왕리는 눈앞이 캄캄했다.

“안되겠다. 돌아가자. 돌아가서 본진을 구하자!”

그러면서 군사를 돌리려 하였으나 그게 잘 될 리 없었다. 그러잖아도 허둥대던 진군 장졸들의 눈에는 갑작스레 돌아서는 왕리와 그 부장들이 겁먹고 달아나는 것으로만 비쳤다. 모두 무기를 내던지고 뒤따라 달아나기 시작하니, 그 길로 진군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적이 달아난다. 더욱 힘을 내어 몰아쳐라. 적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말라!”

항우가 그렇게 장졸들을 격려한 뒤 앞장서 말을 몰고 왕리의 수자기(帥字旗)를 뒤쫓았다. 전날 소각이 당한 참변을 전해 들어서인지 왕리를 에워싸듯 하고 있던 부장들이 차례로 돌아서서 뒤쫓는 항우를 막았다. 항우는 닥치는 대로 그들을 죽이며 바짝 왕리를 뒤쫓았다.

한 20리나 뒤쫓았을까, 한군데 황토 언덕을 돌아서니 저만치 불길에 휩싸인 진군의 본진이 보였다. 앞서 달아나던 왕리와 그 군사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멈칫했다. 항우가 그대로 덮쳐가며 보니 왕리군 앞으로 한 떼의 인마가 초나라 깃발을 펄럭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경포와 포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전날 밤 가만히 진군 본진(本陣) 근처로 다가들어 숨어있던 그들 1만은 그날 아침 왕리가 주력을 이끌고 떠난 뒤 틈을 보아 갑작스레 치고 들었다. 놀란 적이 허둥대는 사이 진채 여기저기에 불을 지른 데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가 뜻 같지 못했다. 곧 적장 섭간의 매서운 반격을 받아 끝내는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섭간은 진채의 불을 끄는 일이 급해 멀리 쫓지 못했다. 십리쯤 뒤쫓다 인심 쓰듯 되돌아갔다. 그 바람에 한숨을 돌린 경포와 포장군이 다시 한번 적의 본진을 휘저어 볼까 하고 군사를 움직이려는데, 왕리의 중군이 그리로 쫓겨온 것이었다.

밀리는 중이라 해도 원래 10만이 넘었던 왕리의 군세에 비해 그때 경포와 포장군이 거느린 군사는 보잘것 없었다. 끌고 나온 1만도 섭간의 반격을 받아 머릿수가 몇 천 줄어들었을 뿐더러, 밤새 이리저리 숨어 다니다가 그 아침에는 한바탕 힘든 싸움까지 한 군사들이었다. 왕리의 대군이 그대로 밀고 들었다면 그들을 짓밟고 본진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런데 이미 패신(敗神)에 홀린 것일까, 왕리의 눈에는 뒤쫓는 항우의 군사들 못지 않은 대군이 홀연히 앞을 막고 선 듯하였다. 감히 정면으로 맞서 뚫고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앞뒤에서 밀고든 초군에게 에워싸이고 말았다.

거기서 거록의 아홉 싸움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진군은 대군이고 거의가 훈련된 정규군이었으나 그렇게 포위되고 보니 이미 군사가 아니었다. 막다른 골짜기에 몰린 짐승처럼 이리저리 몰리다가 놀란 넋이 되거나, 무기를 내던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숨만 빌었다.

진나라의 명장 왕전(王剪)의 손자요, 함곡관을 나온 이래로 싸움에 져본 적이 없는 장함이 가장 아끼는 장수였던 왕리도 살육의 아수라장을 짓누르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한 식경(食頃)을 못 버티고 사로잡혀 항우에게 목숨을 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장함이 믿던 15만 대군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왕리를 사로잡은 초군은 내쳐 진군의 본진으로 밀고 들었다. 겨우 큰 불길을 잡고 한숨을 돌리려던 진장 섭간은 사로잡은 왕리를 앞세우고 밀고 드는 초군을 보고 이미 일이 글러버렸음을 알아차렸다.

“내 어찌 초적(楚賊)에게 항복해 구차하게 목숨을 빌리!”

그 한마디와 함께 아직 불타고 있는 군막 안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항우가 진나라의 15만 대군을 깨뜨린 뒤 그 장수 소각을 목 베고 왕리를 사로잡으며 섭간까지 스스로 불타죽게 만들자 그 위세는 다시 천하 뭇 사람을 떨게 했다. 그 중에서도 거록의 싸움터에서 직접 항우의 분투를 본 제후들은 특히 더했다. 진군을 완전히 무찌른 항우가 제후군의 장수들을 진중으로 청하자 그들은 원문(轅門)부터 무릎걸음으로 기어들며 감히 고개를 들어 항우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에움에서 풀려난 조왕(趙王) 헐(歇)과 재상 장이(張耳)는 거록 성 밖까지 나와 항우와 제후군을 맞아들였다. 성안으로 들어간 항우는 그곳에 모인 여러 제후군을 하나로 묶고 스스로 그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 그러나 실상 항우는 그때부터 모든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어 뒷날의 ‘서초패왕(西楚覇王)’으로 가는 길을 닦게 된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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