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28…백일 잔치 (13)

  • 입력 2002년 9월 19일 16시 46분


“에그머니나, 들여다본다!”

여자들이 나무 대야를 들고 일어나 물을 퍼서 울타리 너머에 있는 남자들에게 끼얹었다.

“아이고!”

“지금 뭐하는 짓이고!”

“최 아저씨가 들여다봤는데 효길 할배 머리가 폭싹 젖었다!”

남탕과 여탕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와 운하 목욕탕은 웃음과 뽀얀 김으로 가득 찼다.

희향은 수건을 꼭 짜서 가슴에 대고 거울에 희미하게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두근 두근,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모두들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있었다. 나와 저 여자가 같이 탕에 몸을 담글 때부터 웃고 싶은 것을, 두근! 두근!

“어머니, 얼굴하고 몸하고 다 새빨갛다”

희향은 증오심에 눈이 고정되어 조그만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검정, 하양, 검정, 하양, 두 개의 눈, 누구의 눈?

수건을 떼자 젖꼭지에 고름 덩어리 같은 젖 찌꺼기가 고여 있었다. 지저분하다. 자식들이 빨아 거뭇거뭇해지고, 소의 젖꼭지처럼 축 늘어지고 말았다. 검정, 검정, 젖꼭지를 잡자 젖이 거울에 튀어, 하양, 하양, 하양.

“어머니, 괜찮나?”

“…괜찮다”

“아버지 나가겠다. 빨리 등 씻어 주라”

비누는 갈색, 거품은 하양, 등은 하양, 팔도 하양, 씻어 주라…씻어 주라…씻어 주라…하양…하양….

“우후후후후, 아버지하고 오빠도 젖었을라나”

“웃을 일이 아니다”

그 여자가 일어났다. 얼굴을 저쪽으로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데, 두근 두근! 이 쪽으로 왔다, 두근! 두근! 무슨 말이든 해야 하나, 두근! 두근! 여자는 소원이 옆에 놓여 있는 놋대야를 들고 걸어 희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썩 나가라! 운하 목욕탕에서 어서 나가라! 밀양을 떠나라!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라! 앗, 남탕의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혹시? 둘이서 무슨 신호를 주고 받았는지도 모른다. 잠시 후 저 여자의 집에서 만나, 두근! 두근!

“소원아, 아버지한테, 조금 더 있어야 나갈 것 같다고 천천히 하시라고 해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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