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준의 이 만화! 그 애니!]가볍게 읽는 짧은 환타지의 매력

  • 입력 2001년 1월 31일 14시 22분


요즘 우리 만화 중에서 가장 인기높은 장르는 아마 판타지일 것입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리니지>를 비롯해 컴퓨터 게임으로 개발된 우리 만화 중 상당수가 이 판타지의 범주에 들죠. 만화팬들에게 인기높은 무협물 <열혈강호>나 <용비불패> 도 사실 엄밀히 보면 '동양적 판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만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건과 마법, 희한한 모험 등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푹 빠지게 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CAST'는 길이는 짧지만 다양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단편 판타지입니다. <어느 비리 공무원의 고백>이라는 좀 특이한 제목의 만화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이죠.

이 단편집에는 99년'이슈·화이트 수퍼만화대상'에서 가작을 수상한 <어느 비리공무원의 고백>을 비롯해 'How to Love 파파', <악의 꽃> 등 신인작가의 풋풋한 재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임주연씨의 단편 'CAST'는 강대국에 볼모로 시집온 공주가 비정한 마법사 여왕의 명령에 따라 최강의 마법주문을 찾으러 떠난다는 큰 스케일을 3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에 담아낸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판타지물답게 국가전복의 음모, 고달픈 모험의 여정 등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한 재미있는 사건들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서로 엇갈리는 두 러브 스토리 속에 담겨져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종종 만화 동인지에서 자주 보는 장난기 어린 표현이 좀 어색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괜히 어정쩡하게 이야기를 늘리지 않고 오히려 깔끔한 결말로 읽는 이에게 적당한 여운을 남겨주는 것이 매력이죠.

뭐, 이 작품이 너무 짧다고 하실 분이 계시다면, 등장인물의 성격과 근원을 알 수 있는 단편 나 '이미지 파괴 4컷극장'이란 부제가 붙은 <그들은 사실 이런 자들이었다>를 감상해 보세요. 꽤 감칠 맛이 납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로도스도전기>나 <베르세르크>처럼 까다로운 복선과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머리를 부여잡아야 하는 판타지물이 있는가 하면, 잠시 지나가는 휴식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그 중 <여기는 그린우드>는 최근 국내에서도 정식 라이센스 만화로 출간됐는데요, 만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에서는 판타지풍의 이야기를 경쾌한 학원물로 변화시켰습니다. 원작이 주는 느낌과 재미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내용에 변화를 준 것이 무척 신선했습니다.

요즘 인기높은 <러브 인 러브(원제 러브 히나)>도 TV 시리즈 제 8화 '검도소녀의 용궁전설, 꿈인가'에서 비슷한 방식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조금 멍청한 남자주인공의 좌충우돌 러브스토리'라는 이제는 너무 많이 등장해 식상한 장르인데요, 애니메이션에서 만화 원작의 캐릭터나 배경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새로운 줄거리를 가미해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판타지물에 대해 종종 등장하는 마법의 주문이 너무 어렵고 등장인물도 많아 헷갈린다는 분들이 있는데요, 굳이 그런 것에 부담 느끼지 말고 모르는 부분 무시하고 편하게 즐기세요. 그런 것이 만화나 애니를 보는 기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세준 <만화평론가> joon@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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