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거인발 배구천재 이야기 '루프!'

  • 입력 2001년 1월 26일 16시 59분


일찌감치 법조계 진출에 뜻을 둔 고1 모범생 서병구. 그의 집안은 대대로 배구가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1915년 국내 배구의 효시격인 베커와 함께 코트에서 뛰던 선수였다. 한국 배구협회 회장인 할머니 김향희 여사는 한국 배구계의 가장 영형력 있는 인물이자 배구역사의 산증인이다. 어디 그뿐인가. 병구의 아버지 서만득은 국내 배구 최강인 강동대학의 감독이며 삼촌은 배구 전문기자다.

이쯤되면 모든 가족들이 나서서 병구를 배구부에 들게 하려는지 이해할만도 하다.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공부를 하루 속히 때려 치우라고 서병구에게 온갖 회유와 협박과 애원을 하는 것이다.

최근 4권이 출시된 최해웅씨의 '루프!'(시공사 펴냄)는 <슬램덩크>의 강백호에 버금가는 이 괴짜 배구천재 서병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병구가 뜻밖에 배구부에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나 가족들의 눈물 어린 애원 때문이 아니라 어여쁜 배구부 매니저 애라를 보기 위해서다.

애라는 "너처럼 작은 애가 들어올만큼 배구부는 만만한 데가 아냐. 여기가 역도부인줄 아냐?"라고 놀리지만 병구는 좌절하지 않는다. 2m가 넘는 장신들이 우글대는 코트 위에서 병구는 감춰진 천재적인 배구실력을 서서히 드러낸다.

볼을 낮게 날려서 상대 코트에 뚝 떨어지게 하는 드라이브 서브, 손의 위치에 따라 수없이 변화하는 플로터 서브, 거기다 상당한 파워와 노련미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천정서브까지.

신들린듯 코트를 휘어잡는 서병구에게 뜻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다. 자신의 거인발을 꽁꽁 싸맨 운동화 앞창이 뜯어져 버린 것. 손가락처럼 긴 발가락을 항상 신발 속에 구겨넣고 살아온 병구는 이때부터 거인발 콤플렉스를 당당히 드러내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치게 된다.

'루프!'는 작가 최해웅씨의 데뷔작이지만 3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나온 작품 답게 여러 강점을 보여준다. 만화계의 소문난 배구광으로서 틈만 나면 배구 코트를 찾은 작가는 우선 디테일을 강화함으로써 현실감을 높였다. 줌인을 사용하면서 컷을 효과적으로 배분한 것도 경기의 박진감을 살리는데 한 몫 한다.

특히 감독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배구 상식은 만화는 물론 배구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예컨대 배구에서 스파이크를 하려면 최소한 네트 높이보다 20cm 위에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풍부한 캐릭터도 이 만화의 특징. 병구의 중학교 친구이자 라이벌인 거성고의 신진욱, 해체당한 배구부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병구와 고군분투하는 윤철, 거성고의 주전 선수이면서 지역최강 라이트 공격수인 장제후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여러명 등장한다.

오현주<동아닷컴 기자>vividr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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