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시화호의 죄와 벌

  • 입력 1996년 11월 8일 20시 48분


시골뜨기 결손가정 출신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이 땅에 태어났다면 「막가파」는 아니더라도 불량청소년으로 전락했을지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는 「일등인생」을 달려 대통령에 당당히 재선했다. 그 클린턴의 재선 제일성이 21세기로 가는 다리를 놓겠다는 것이었다. 흔한 정치적 수사(修辭)일 수도 있는 이 말이 우리에게 부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21세기는커녕 당장 한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우리 공직사회의 무능 부패 단견 무책임 때문이다. ▼공직사회가 만든 재앙▼ 「죽음의 호수」 시화호는 그 우리 공직사회가 만들어낸 재앙에 다름 아니다. 금주 초 감사원이 밝힌 시화호 수질오염 감사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오폐수 차단시설 없이 방조제부터 쌓아 올린 수자원공사, 2차 처리해야 할 생활하수 공장폐수를 1차 처리도 다 하지 않고 시화호로 방류한 안산시, 반월공단 공해배출업소의 폐수 무단방류를 모른체 방치한 한강환경관리청. 거기에다 수자원공사는 시공업체가 하수관로 이음부를 부실시공하고 오수관로와 우수관로를 잘못 연결해 오폐수가 빗물에 섞여 시화호로 흘러들게 한 사정을 묵인했다. 한마디로 공직사회가 시공에서 사후관리까지 일제히 「나 몰라라」로 일관하며 국민세금 5천억원을 투입해 여의도 20배 크기의 시궁창을 만들었다. 썩은 물이 모이는 하수구 끝에 유람선을 띄울 담수호를 만들겠다는 그 자다가도 웃을 발상을 「꿈의 국토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입안 추진한 당사자들은 지금 모두 자리에 없다. 재앙은 남고 원인 제공자는 사라진 것이다. 金泳三대통령은 지난 3월 녹색환경의 나라를 만드는 환경대통령이 될 것을 선언하고 환경공동체 건설을 위한 5대 기본원칙의 제1원칙으로 정부 수범(垂範) 원칙을 제시했다. 시화호 시공 관리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배반했다. 「태어나서는 안될 호수」 시화호를 태어나게 한 시화지구 개발사업이 金대통령 취임 전에 추진된 사업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선언은 여기에서도 반드시 실천되는 것이 옳다. 그 실천의 하나가 엄중한 책임추궁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환경부는 99년까지 4천5백억원이라는 또 다른 국민세금을 쏟아부어 시화호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계획이 그대로 실현된다 하더라도 시화호는 계속 썩을 수밖에 없다. 썩은 물은 수시로 바다로 방류돼 인근 해역을 오염시키고 바다를 죽일 것이다. 그것 또한 시화호가 내린 벌이자 보복이다. ▼계속되는 악순환▼ 시화호를 새로 태어나게 하기는 어렵다. 트기도 어렵고 메우기도 어렵다. 그건 그것대로 중지(衆智)를 모으고 이제부터라도 제2, 제3의 시화호가 태어나지 않도록 국토관리의 철학을 바꿔야 한다. 거기에는 해안습지와 갯벌을 메워 담수호를 만들고 농경지와 공업단지를 조성해 국토를 넓힌다는 대규모 간척사업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자연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생태계라는 해안습지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오늘 하루를 위해 미래를 가불하는 행위다. 시화호는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공직자들이 이러한 교훈 앞에서 겸허하지 않을 때 21세기로 가는 우리의 다리는 결코 놓일 수 없을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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