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가야만 끝난다… 걷지 않으면 빛나는 기적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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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100인에 뽑힌 정유정 작가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보내는 편지

소설가 정유정 씨가 산티아고 순례길 초입인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유정 작가 제공
소설가 정유정 씨가 산티아고 순례길 초입인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유정 작가 제공
올 2월, 나는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났다. ‘카미노’라 불리는 이 순례여행에는 여러 코스가 있었다. 그중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에 이르는 ‘프랑스 길’을 택했다. 길이 복잡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카미노의 상징인 노란 화살표의 인도를 받는다는 점도. 계획은 이랬다. 산티아고를 넘어 서쪽 땅끝 마을 피니스테레로, 100km를 더 걸어 바다까지 간다. 나는 ‘900km’가 얼마나 먼 길인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 순례길의 첫 3분의 1은 ‘육체와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3분의 1은 정신과의 싸움, 세 번째는 영혼과의 싸움. 맞는 말이었다. 처음엔 몸이 힘들었다. 9kg짜리 배낭을 메고 하루 7시간을 걷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다음엔 ‘왜 이 길을 가는가’에 대한 회의가 찾아들었다. 그 일이 일어난 건, 끊임없이 완주 의지를 시험당하던 어느 날 오후였다. 숲 속 갈림길에 젊은 남자가 반바지를 훌렁 내린 채 서 있었다. 그러니까 스페인 산속에서 세상 어느 동네에나 있다는 ‘바바리맨’을 만난 것이었다. (스페인 바바리맨은 축구팀 유니폼을 입었다는 게 좀 달랐지만) 그의 등 뒤에 화살표가 있는 것 같았지만 확인할 틈이 없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가 ‘올라(안녕)’, 하며 다가서는 바람에. 나는 “엄마”를 부르며 달아났다. 그는 ‘올라! 올라!’를 외치며 뒤따라 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엇비슷한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주변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머릿속 목소리만 시끄럽게 물어대고 있었다. 이봐. 노란 화살표, 어디 있어? 나는 걸음을 멈췄다. 없었다. 가파른 산등성이와 깊은 골짜기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도, 마을도 없었다. 어느 길로 왔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갈림길을 두어 개 더 지나고, 마을 하나를 통과하고, 국도 교차로를 지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시간은 저녁을 향해 가는데. 다리는 천근만근인데.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라고는 오렌지 한 알뿐인데.

그날 확인한 건데, 내 영혼은 그리 고상하지 않았다. 바바리맨 정도에 놀라 길을 잃어버린 자신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겁먹은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우왕좌왕하고, 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새소리에 기겁해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뭘 어째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도를 봐봐야 여기가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나무 밑에 옹크린 채 코를 훌쩍대며 오래전 어느 시절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투병하던 때, 실제적인 가장 노릇을 하던 그때, 앞이 보이지 않았던 20대 시절을. 밤마다 스스로 걸었던 주문을 기억해 냈다. 겁먹지 마. 주눅 들지 마. 똑바로 쳐다봐.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정면에 저녁 해가 붉게 타고 있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는 서쪽에 있는 도시였다. 그러므로 저 붉은 해를 향해 걸어가야 했다.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났다. 지는 해를 안고 걸었다. 땅거미가 내리고 밤이 찾아온 후엔 달을 등지고 걸었다.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쉼 없이 걸었다. 걷지 않으면 어디에도 닿지 못할 것이므로. 어느 마을에 도착한 건 밤 9시경이었다. 마을 입구에 그토록 찾던 노란 화살표가 기적처럼 빛나고 있었다.

모든 길은 가야만 끝이 난다. 그러니 가야 한다. 겁먹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똑바로 쳐다보며.

소설가·‘7년의 밤’ ‘28’ 저자
#스페인#정유정 작가#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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