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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미세먼지만큼 두려운 성급한 환경 포퓰리즘[광화문에서/김현수]

입력 2019-06-07 03:00업데이트 2019-06-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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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올해 초 큰맘을 먹고 건조기, 공기청정기, 의류관리기 등 이른바 미세먼지 가전 3종을 들였다. 세탁실에 건조기 둘 자리가 없어 거실에 둬야 했지만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다. ‘장비발’로 미세먼지 공격을 어떻게든 피해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화장품 가게를 가도 얼굴에 묻은 미세먼지를 없애 준다는 신제품이 가득하다. 이렇게까지 환경문제가 일상이 됐던 때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각종 기기에 거금을 쓰고, 바꾸기 쉽지 않은 습관까지 고쳐 보려 할 정도로 절박한 문제가 됐다.

기업도 절박함 속에 익숙하게 해오던 관행, 심지어 산업의 틀을 환경문제와 관련해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충남도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고로(용광로) 한 곳의 가동을 10일 동안 중단하라는 행정처분을 내려 논란이 커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졌다고 본다.

한국에 처음 제철소가 생긴 이래 50년 동안 철강업체는 고로를 정비할 때 폭발 위험을 막으려 안전밸브(브리더)를 열어 왔다. 그런데 최근 여러 환경단체는 기업이 브리더를 무단으로 열어 정화시설 없이 오염물질을 배출했다고 주장했고, 지자체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의 포스코 제철소도 각각 고로 1기 조업정지 처분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브리더를 여는 것 외에 다른 기술적 대안이 없는 철강업계로서는 “지자체의 이번 결정이 제철소 문을 닫자는 것과 다름없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고로 가동을 5일만 멈춰도 쇳물이 굳어버려 3∼6개월은 재가동이 어렵다.

환경이 생존의 문제가 됐기에 앞으로 이 같은 환경규제와 산업계의 충돌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현명한 해법을 찾는 선례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환경 관련 규제나 정책이 새로 도입되려면 대체할 기술과 이에 따른 비용, 산업 파급 효과 등을 함께 고려해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자동차업계도 환경부가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차 판매 의무제 카드’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바싹 긴장한다. 배터리값이 비싸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한 대당 2000만 원 이상 손실을 본다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 주요 선진국은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시기를 정해 놓고 자동차업계에 준비할 시간을 준다. 자동차 생산국이 아닌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각각 2025년과 2030년, 자동차 생산국인 프랑스와 영국은 2040년으로 정했다. 국내 철강업계가 브리더 개방과 관련한 기술 대안을 찾을 시간을 달라고 하는 것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고로 조업정지 처분을 처음으로 확정한 충남도는 전남도나 경북도와 달리 기업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청문회도 열지 않았다. 왜 그럴까.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충남 일대가 다른 곳보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다는 인식이 있는 데다 최근 서산 유증기 유출 사태 등이 겹쳐 지역주민 불만이 크게 쌓였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환경과 산업 논리가 부닥칠 때마다 이처럼 민심만을 앞세운 ‘환경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생기는 지점이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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