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각이 테레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초안을 지지하면서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이혼 협상’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말하자면 이혼 조건에 대한 영국 내 합의가 겨우 이뤄진 것.
이르면 오는 25일 EU 27개국이 특별 정상회의에서 협상안을 검토하고 승인할 예정이지만, 서명 이후 영국 의회의 비준을 받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46년 만의 EU 탈퇴…‘한 걸음 더’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탈퇴 시기는 EU 가입 46년을 맞는 2019년 3월29일. 당시 탈퇴 찬성이 51.9%로 ‘잔류하겠다’는 48.1%의 응답을 근소하게 앞섰다.
이후 영국은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물러났고 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재투표를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브렉시트를 주도해 온 ‘탈퇴파’가 정작 브렉시트 이행 절차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나 브렉시트 후 영국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테레사 메이 총리는 EU 잔류를 지지했었지만, 총리로 취임하면서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라고 천명하고 “브렉시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EU 밖 영국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지난해 6월 본격적인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한 뒤 17개월이 넘도록 양측은 공회전을 거듭했다.
메이 총리는 최종적으로 아일랜드와의 국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때 통행 및 통관 절차를 엄격히 하는 것)를 막기 위해 당분간 분담금을 내면서 EU 단일시장에 잔류하는 일명 ‘체커스 계획’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구상은 EU는 물론 영국 내부에서도 비판받으면서 최악의 경우 ‘노 딜 브렉시트’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英내각, 브렉시트 협상 초안 지지…‘집단적 결정’
영국과 EU는 13일 브렉시트 협상안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에는 585쪽 분량의 브렉시트 협상 합의문과 향후 EU와 영국의 관계에 대한 정치적 선언이 포함됐다.
메이 총리는 14일 특별 내각회의를 소집했고, 5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내각이 협상안과 정치적 선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메이 총리는 “내각이 나의 브렉시트안을 지지했다”며 “내각의 집단적인 결정(collective decision)은 정부가 EU 탈퇴 초안과 정치적 선언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안은 국익을 위한 것이지만 앞으로 험난한 날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나는 이것이 영국 전역에 가장 큰 이익을 주는 결정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것이 (EU와) 협상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는 이번 합의를 ‘집단적인 결정’이라고 표현해 합의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견이 컸던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간 경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하드 보더’를 방지하는 이른바 ‘백스톱’(backstop) 관련 해결책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초안에 따르면 영국과 EU 양측이 21개월 내에 국경 문제에 광범위한 합의를 하지 못하면 영국 전체가 관세 동맹으로 남는다.
◇앞으로 진행과정은…의회 비준 ‘험로’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수석협상대표는 영국 내각이 브렉시트 협상안을 지지한 것에 대해 “결정적인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따라 도날트 투스크 EU 상임의장은 브렉시트 협상안 서명을 위한 EU 특별 정상회담을 소집할 수 있게 됐다. 바르니에 대표와 투스크 의장은 15일 오전 7시 브렉시크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다.
영국 내각의 서명 뒤 EU 집행위원회(EC)가 초안의 세부 내용과 정치적 선언문을 공개하고, EU 27개국이 이달 말 긴급 정상회담 개최를 협상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11월25일 정상회담 개최를 시사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가장 까다로운 과정인 ‘의회 동의’를 얻기 위한 전투에 돌입한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잃으며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안에 대해 의회의 설득을 구해야 한다. BBC는 12월7일경에 의회 표결에 부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일 협상안이 의회에서 부결된다면 모든 일은 물거품이 된다.
영국 정부는 그동안 현재 협상안이 아니면 노딜 브렉시트가 있을 뿐이라고 호소해왔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CNN은 내다봤다.
이론적으로 정부는 또다시 수정된 협상안을 들고 의회를 찾아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현 정권의 퇴진이나 총선, 2차 국민투표 등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과정에 맞닥뜨려야 한다.
반대로 협상안이 의회를 통과한다면 이는 영국 입장에서 ‘탈퇴 협정 법안’이 나오는 것으로, 영국은 브렉시트를 가시화해 공식적으로 EU를 떠나는 이행 기간에 돌입한다.
협정의 최종 비준은 다시 EU로 넘어간다. CNN은 “브렉시트 협상이 여기까지 이루어졌다면 EU 의회가 브렉시트에 제동을 걸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영국은 내년 3월29일 46년만에 EU를 공식 탈퇴하게 된다.
◇영국 내 반발은?
메이 총리가 내각의 동의는 얻었지만 영국 내 정치권의 반발도 커지는 모습이다.
야당인 노동당의 당수 제레미 코빈은 협상안이 “영국 전체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기 때문에 ‘국가의 이익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브렉시트 협상 과정을 ‘난장판’이라고 표현하며 비판했던 그는 15일 오전 노동당이 협상안에 찬성할지 반대할지 여부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영국 보수당 일부도 이번 협상안이 앞으로 영국이 몇년 간 EU 규범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제이콥 리스-모그 의원은 협상안을 영국을 EU 관세 동맹 안에 두고 분열시키는 ‘매우 썩은 거래’라고 분노했다.
메이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도 협상안을 비판하며 반대파로 돌아서고 있다.
BBC는 “한 보수당 고위 간부가 인터뷰에서 이르면 15일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진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면서 “메이 총리가 이날 ‘적대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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