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강제병합 100년’ 담화]발표 왜 10일로… 막후 주역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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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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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8·15, 8·29 피해 속전속결
센고쿠-오카다-하토야마, 반대파 설득

일본 총리담화의 발표 시점과 관련해서는 당초 8월 15일과 22일, 29일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15일은 식민지 지배가 종료된 ‘한국 광복절’이라는 의미가 있고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이다. 22일은 한일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날이고 29일은 조약이 공포된 날이다.

그러나 담화는 예상보다 이른 10일 나왔다. 야당과 우익세력이 총리 담화에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날짜까지 ‘의미 있는 날’에 맞췄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또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총리담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화답이 담기길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15일을 넘기면 한국에 떼밀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듯하다.

야당과 우익세력은 물론이고 정권 내부의 일부 반대까지 무릅쓰고 총리담화가 나온 데에는 간 총리와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의 뚝심이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몇 차례 언론에 ‘담화 검토’를 흘려 기정사실화했고 반대 세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거나 ‘(아픔을) 받은 쪽은 쉽게 잊지 못한다’ 등 이번 총리담화에 처음 등장하는 대목은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이 지난달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던 표현 그대로다.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공안위원장도 황장엽 김현희 씨의 방일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열심히 뛰었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이 회장인 ‘민주당 내 전략적인 일한관계를 구축하는 의원모임’은 주일 한국대사관 측과 교감해왔다.

최대 우군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였다. 일본 정계의 대표적 친한파인 하토야마 전 총리는 원만한 한일관계를 위해선 총리담화가 꼭 필요하다며 당과 내각을 설득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적극 도왔다. 총리 시절 이 대통령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그는 주일대사관을 통해 한국 측 목소리를 직접 듣고 담화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달 초 히로시마(廣島) 원폭 피해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한일 외교 당국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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