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은 정담(情談)을 나누겠지만, 나라 걱정도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 헌법재판소가 박한철 소장이 말한 3월 13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면 4월 26일에 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수도 있다. 그러면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딱 3개월. 우리 앞에 역사상 유례없는 ‘초(秒)치기 대선’이 펼쳐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전임 대통령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치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어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대선 출사표를 냈다. 유 의원은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을 이뤄내는 것이 시대가 부여한 길”이라며 “권력과 재벌의 정경유착은 그 뿌리를 뽑아 법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서울시장직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대권에 눈이 멀어 시정(市政)을 사실상 놓았던 시장이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서울시로 돌아오겠다는데 받아줄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시민의 처지다. 대선 주자 지지율 1, 2위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각각 ‘정권교체’와 ‘정치교체’를 주장한다.
‘정권교체’ ‘정치교체’ ‘정의로운 민주공화국’ 다 좋다. ‘87년 체제’ 이후 6명의 실패한 대통령이 줄줄이 양산된 것은 슬로건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 슬로건이 실현되도록 정부와 국회를 움직이는 정치력이 부족했거나, 대국민 설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어떤 대통령은 주변의 비리로 무너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은 뭘까.
첫째는 비전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다. 지금 우리는 외교안보와 경제의 복합위기 터널에 갇혀있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국론 분열 위기 및 공동체 파괴 현상이다. 공동체를 좀먹는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일자리다. 어떤 대선후보가 양질의 일자리, 특히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 눈 밝게 살펴야 한다.
둘째는 설득력이다.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높았던 것은 백악관, 의회, 마을회관, 교회에서 정치인과 국민을 직접 대면해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해 국론을 결집해왔기 때문이다. 촛불 민심에서도 드러나듯, 더 이상 일방통행 식 정치는 안 통한다. 위기에 불안을 느끼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지도자가 대통령감이다.
셋째는 경영 능력이다. 박 대통령의 처절한 실패는 조직 경영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웅변한다. 여의도 정치 경험만으로 나라를 운영하기에 대한민국은 너무 커졌다. 크고 작은 조직에서 갈고 닦은 경영 능력과 경험이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의 밑거름이 된다. 자기희생과 도덕성은 이런 ‘대통령의 조건’을 뒷받침하는 정통성의 기반이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대통령다운 대통령, 나라의 격(格)을 높일 대통령을 고대하는 설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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