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머리위의 북핵, 공동 응징 나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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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초강력 독자제재 추진 합의… 트럼프 “군사행동은 분명한 옵션”
멕시코선 北대사 추방 명령 내려… 中, 원유 공급제한 동의 가능성
9일 北정권수립일 추가 도발 촉각

“평양의 분별없는 도발로 세계가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경제와 외교 분야 모두 더 강력한 독자 제재를 시작합시다.”

7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외교장관회의에서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외교안보 정책 총괄)는 이렇게 제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회원국 모두의 동의로 EU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과 별도로 독자적인 대북 추가 제재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미국과 북한 양국의 문제로 보고 “대화와 협상에 나서라”고 점잔을 빼던 유럽의 모습은 옛이야기다. 북한이 7월 4일 사거리 1만 km를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 발사 직후 “세계 그 어느 지역도 타격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유럽의 안방도 위험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수도 파리가 평양에서 8735km 거리에 있는 등 유럽 전역은 북한 화성-14형의 타격 범위 안에 있다.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은 최근 “유럽은 김정은이 개발하는 미사일 사거리 안에 예상보다 일찍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을 맞아 화성-14형 등의 실거리 사격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뿐만 아니라 남미와 동남아시아 등 세계 국가들이 유례없이 발 빠르게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 EU의 독자 제재에는 미국이 발표한 새 안보리 대북제재 초안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AFP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제재안의 핵심은 그동안 개별 국가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로 방치했던 북한 노동자 수입 금지 조항이다.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일부 국가에 파견된 약 300명의 북한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외화가 핵이나 미사일 개발 비용으로 쓰인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은 8일 “유럽에서 북한에 돈을 보내고 있는 많은 노동자를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또 회원국 10개국에 설치돼 있는 북한대사관의 외교관 추방 등 단교 직전 수준의 강력한 외교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31일 스페인이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조치로 자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파견된 외교관 3명 중 1명은 9월 중으로 귀환하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고, 올 초 불가리아도 동유럽 북한 거점 역할을 해온 자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외교관 2명 감축을 명령해 9명으로 줄었다. 독일은 북한대사관의 유스호스텔 임대사업 폐쇄 조치를 내렸다. 불가리아, 루마니아도 북한대사관 임대사업 폐쇄에 돌입한 상태다.

대서양 건너편 멕시코는 북한대사를 추방하는 사상 초유의 강수를 뒀다. AP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는 이날 북한의 핵실험과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항의 표시로 김형길 주멕시코 북한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72시간 이내에 떠나라고 명령했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의 태도도 심상치 않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일 “중국이 더 강한 안보리 제재를 지지할 것이라는 강한 신호를 보냈다”며 “원유 공급의 부분적 중단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신문은 부분적 대북 원유 금수 조치뿐 아니라 북한 섬유 제품 수입 금지, 북한 노동자 임금 송금 금지 등에도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 경고 수위를 다시 높였다. 7일 “군사 행동은 분명한 옵션”이라며 “(미국이) 군사력을 쓰게 된다면 북한에 아주 슬픈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을 내 “제재와 압박에 집착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유례없이 단호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김수연·황인찬 기자
#북핵#eu#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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