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왕세자를 사칭한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까지 악용되면서 실시간 영상통화마저 믿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AFP통신은 3일(현지시간) 함단 빈 무함마드 두바이 왕세자를 사칭한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인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 마리아(가명)의 사연을 보도했다.
마리아는 AI로 만든 왕세자의 영상과 대화에 속아 1년 동안 모은 저축을 모두 잃었다.
마리아는 최근 데이팅 사이트에서 두바이 왕세자 함단 빈 무함마드를 사칭한 남성과 대화를 시작했다. 이후 대화는 메신저 앱으로 이어졌고, 남성은 연애 감정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마리아가 잠든 시간에도 메시지는 이어졌다.
AFP가 확인한 왓츠앱 영상통화 녹화본에는 왕세자와 매우 흡사한 외모의 남성이 등장했다. 입 모양과 말소리가 자연스럽게 일치하며 “안녕, 사랑하는 사람. 당신의 사랑과 응원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목소리는 실제 왕세자의 것과 달랐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를 의심하지 못했다. 사랑에 빠진 그는 사기범의 말을 믿고 결혼증명서와 ‘왕실 회원 카드’를 발급받아야 두바이에서 일할 수 있다는 설명에 속아 10만 페소(약 249만 원)를 송금했다.
사기범은 이후 호텔에서 만나자며 예약비 명목으로 6만 페소(약 149만 원)를 추가로 요구했다. 이때 수상함을 느낀 마리아는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확인했고, 계정 기반 지역이 두바이가 아닌 나이지리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리아는 즉시 연락을 끊으며 마지막으로 “지옥에나 가라, 사기꾼”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 “두바이 왕세자입니다”…SNS서 퍼지는 가짜 왕세자 사기
최근 왕세자의 높은 인지도와 170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악용해 피해자들을 유인하는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이들은 왕세자를 사칭한 페이스북 그룹으로 이용자들을 유인한 뒤 왓츠앱이나 텔레그램 등 개인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간다. AI로 조작한 이미지와 영상, 왕세자가 직접 쓴 시를 베낀 글 등을 활용해 신뢰를 얻는 수법도 사용한다.
피해가 확산되면서 이를 경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가짜 왕세자에게 속지 마세요(Do not fall for fake prince)’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파자 사기를 멈춰라(Stop Fazza Scam)’라는 온라인 청원도 등장했다.
청원 참여자들은 함단 왕세자 측에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청원에는 사기범들이 두바이 전화번호를 이용해 기부금이나 위조 결혼증명서 발급 비용 등을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고, 피해자의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 은행 계좌나 가상화폐로 송금을 유도해 추적을 어렵게 만든다는 내용이 담겼다.
● AI 기술 발전에 진화하는 로맨스 스캠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얼굴 교체(face swap)와 실시간 동작 제어 기술도 고도화되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얼굴 표정을 실시간으로 조작해 실제와 구별하기 어려운 영상을 만들 수 있어 딥페이크를 악용한 사기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명인을 사칭한 로맨스 스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를 사칭한 사기범들이 한 여성에게서 83만 유로(약 14억5000만 원)를 가로챈 사건이 발생해 당국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세계사기방지연맹(GASA)은 지난해 전 세계 소비자들이 각종 사기로 약 4420억 달러(약 675조 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으며, 여기에는 로맨스 스캠 피해도 포함된다.
미국 코넬대의 데이비드 랜드 교수는 “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실시간 영상 딥페이크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그 단계에 이르면 대면하지 않는 모든 대화에서 상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사람의 눈과 귀만으로는 사실상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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