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스포츠구장 명명권의 세계
LA 다저스, 유니클로와 파트너십… 1962년 개장 후 처음 명칭 바꿔
100년 전 ‘리글리 필드’가 첫 사례… 이젠 기업명 단 구장 흔하게 보여
‘빚 2조’ 스페인 축구명문 바르사… “파산하는 것보다 개명이 더 나아”
英 맨시티, 명명권 팔고 선수 수혈… 14년간 정규리그 8차례 우승 군림
게티이미지뱅크
“다저스타디움은 매물로 나온 적이 없다. 앞으로도 우리 구장의 이름을 파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LA 다저스의 스탠 캐스턴 사장(74)은 2017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다른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단은 안방구장 명명권(命名權)을 외부 기업에 파는 일이 흔하지만 1962년 문을 연 이래 한 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은 ‘다저스타디움’의 역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로부터 9년이 지난 올해 다저스 안방구장 공식 명칭은 ‘유니클로 필드 앳 다저스타디움(Uniqlo Field at Dodger Stadium)’이 됐다. 다저스가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제휴 관계를 맺기로 하면서 구장 명명권도 계약에 포함한 것이다. 캐스턴 사장은 계약 소식을 알리면서 “유니클로와 함께 우리 구장의 역사적인 파트너십을 발표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했다.
● 다저스마저… ‘64년 역사’ 구장명 바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의 안방구장 ‘다저스타디움’의 외야 우중간 전광판 위에 ‘유니클로 필드’가 새겨진 간판이 내걸려 있다. 다저스는 지난달 일본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제휴를 맺으며 구장의 공식 명칭을 ‘유니클로 필드 앳 다저스타디움’으로 바꿨다. 196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문을 연 다저스타디움에 기업명이 붙은 건 처음이다. 유니클로 제공다저스가 64년 만에 안방 구장의 간판을 바꾼 건 결국 ‘돈’ 때문이다. 다저스는 일본인 ‘슈퍼 스타’ 오타니 쇼헤이(32)와 10년 총액 7억 달러(약 1조355억 원)에 계약한 걸 시작으로 야마모토 요시노부(28·12년 3억5000만 달러) 등 스타 선수 수집에 나섰다. 그리고 2024년과 지난해 월드시리즈 2연패에 성공하며 투자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다만 우승 트로피가 흑자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다저스가 선수단 몸값으로 약 4억 달러(약 5898억 원)를 지출했다고 추정했다. 다저스는 지난해 매출 약 8억5000만 달러(약 1조2533억 원)로 MLB 30개 구단 가운데 1위였지만 2000만 달러(약 295억 원) 적자를 피하지는 못했다.
LA 다저스의 지역이자 지구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의 안방구장은 2000년 문을 연 이후 간판을 4번이나 바꿨다. 개장 때 명명권 계약을 맺은 지역 전화회사가 인수합병을 거치며 구장 이름이 3번 바뀐 까닭이다. 이후 2019년 정보기술(IT) 기업 오라클과 20년간 3억5000만 달러에 새 계약을 맺어 현재는 ‘오라클 파크’ 간판이 걸려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1958년 다저스와 함께 뉴욕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연고지를 옮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2000년 문을 연 새 구장 간판을 네 번(퍼시픽벨 파크→SBC 파크→AT&T 파크→오라클 파크) 교체했다. 개장 때 캘리포니아 지역 전화 회사 퍼시픽벨과 명명권 계약을 맺었는데 이 회사가 인수 합병을 거치면서 구장 이름도 바뀌었다. 이 계약이 끝난 뒤 2019년 정보기술(IT) 기업 오라클과 20년 총액 3억5000만 달러(약 5262억 원)에 계약하면서 현재 이름을 얻었다.
오라클은 그전에는 샌프란시스코와 함께 ‘베이 에어리어’에 속한 미국프로농구(NBA) 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안방구장 명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골든스테이트는 2019∼2020시즌을 앞두고 오클랜드에 있던 ‘오라클 아레나’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의 ‘체이스 센터’로 안방을 옮겼다. 그러자 오라클이 마침 새 스폰서를 찾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한 것이다.
기업에서 구장 명명권을 사고 싶어 하는 이유 역시 돈이 되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2015년 사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22% 올랐는데 구장 명명권을 보유한 기업 주가는 두 배가 넘는 580% 올랐다. 또 영국 금융 회사 바클리스는 뉴욕에 연고를 둔 NBA 팀 브루클린 네츠 구장 이름을 사면서 세계 금융 중심지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 명명권 거래 100년사… 광고판 된 구장
스포츠 구장의 명칭을 기업 마케팅에 활용한 첫 사례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껌 재벌’ 윌리엄 리글리(1861∼1932)는 MLB 팀 시카고 컵스를 인수한 뒤 구장 이름을 ‘리글리 필드’로 바꿨다. 본인의 성(姓)이자 기업 이름을 구장 간판에 박아 넣으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린 것이다. 이후 구단 주인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이 구장 이름은 여전히 리글리 필드다. 현재 리글리사(社)에서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안방 ‘부시(Busch) 스타디움’은 경기장 명명권 역사상 가장 영리한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맥주 재벌’이자 세인트루이스 구단주였던 오거스트 안호이저 부시(1899∼1989)는 1953년 새 구장을 지으면서 주력 제품 이름을 따 ‘버드와이저 스타디움’으로 부르려 했다. 하지만 MLB 사무국이 “특정 제품명을 쓰는 것은 지나친 상업주의”라며 승인하지 않자 부시는 자기 성을 따서 ‘부시 스타디움’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고는 ‘부시’라는 이름으로 맥주를 출시했다. 경기장 전체를 합법적인 맥주 광고판으로 탈바꿈시킨 역발상이었다.
아예 구단과 무관한 회사에 구장 명명권을 판 최초의 구단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팀 버펄로 빌스다. 버펄로는 1973년 식료품 회사 리치푸드에 25년간 구장 명명권을 넘겨주면서 15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리치푸드는 계약 기간 매출이 6600만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23배 가까이 늘어나며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다만 명명권 계약이 항상 ‘윈윈’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MLB 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00년 새 구장 문을 열면서 에너지 기업 ‘엔론’과 30년 총액 1억 달러에 명명권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 엔론이 회계 부정으로 파산하면서 이 구장 이름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업 스캔들을 상징하는 간판이 됐다. 휴스턴은 계약 해지금 250만 달러를 지불하고 난 뒤에야 구장 이름을 바꿀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2011년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사를 맡은 SK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을 리모델링한 뒤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이라고 이름 붙인 걸 구장 명명권 첫 사례로 꼽는다. 한국은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팀이 기업 이름을 달고 있어 모기업이 구장 이름 명명권도 가져가는 게 일반적이다. 프로야구 팀 KIA가 2014년 새 구장 문을 열면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라고 이름 붙인 게 시작이다. ● “파산보다 낫다”, 유럽 축구 명가도 개명
전통과 낭만을 먹고사는 유럽 축구계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유럽에서 축구장 명칭을 바꾸려면 미국보다 명분이 필요하다. 팬들에게 응원팀 안방구장은 팀의 영혼과 지역 사회의 역사가 깃든 ‘성지(聖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FC 바르셀로나(스페인·바르사)는 2019∼2020시즌 도중 안방구장 ‘캄 노우’에 대한 명명권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수익금 전액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퇴치 연구 및 방역 프로젝트에 기부하겠다”고 강조했다. 1899년 협동조합 형태로 창단한 바르사는 ‘시민의 클럽’을 자처하면서 2012∼2013시즌까지는 유니폼에도 상업 광고를 부착하지 않았던 팀이다.
그러나 야심 찬 계획과 달리 코로나19로 수익이 줄어들면서 바르사는 13억5000만 유로(약 1조9000억 원)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됐다. 바르사는 결국 2022년 음원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에 구장 명명권을 팔았다. 스페인 언론 등에 따르면 2034년까지 구장 명명권과 유니폼 광고비 등을 포함해 매년 6000만∼7000만 유로(약 817억∼950억 원)를 받는 조건이다.
그렇다고 구장의 간판을 내주는 게 꼭 낭만을 버리는 일만은 아니다.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맨시티)는 안방구장의 이름을 내주는 대신 ‘우승’이라는 더 큰 낭만을 얻었다. 맨시티는 2011년 에티하드항공과 10년간 약 4억 파운드(약 7000억 원)에 이르는 명명권 및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안방구장 공식 명칭도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바뀌었다.
맨시티는 이해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에 이적료 3800만 파운드(약 670억 원)를 주고 공격수 세르히오 아궤로(38·은퇴)를 영입했다. 아궤로는 맨시티 유니폼을 입고 처음 뛴 2011∼2012시즌 퀸스파크 레인저스를 상대로 치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역전 골을 터뜨려 팀에 44년 만의 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이후에도 엘링 홀란(26) 등 ‘월드 클래스’ 선수를 연이어 수혈한 맨시티는 지난 시즌까지 8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EPL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2025∼2026시즌 현재 EPL 1, 2위를 다투는 아스널(에미레이트 스타디움)과 맨시티 모두 기업 명칭이 들어간 구장 간판을 내걸고 있다. 3위로 이들을 추격 중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1910년 개장한 안방구장 이름 ‘올드 트래퍼드’를 116년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20억 파운드(약 3조4000억 원) 규모로 새 구장 건설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명명권을 시장에 내놨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경기장 이름을 상업적으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클린 베뉴(Clean Venue)’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챔피언스리그 등 UEFA 주관 경기 때는 구장이 모두 원래 이름으로 돌아가는 건 물론이고 구장 안에 있는 기업 로고나 간판도 모두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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