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명은 사실 기록”…전세계에 5·18 진상 알린 앤더슨 기자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2일 2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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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전쟁을 취재하다 헤즈볼라의 인질로 붙잡혔던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기자(왼쪽)가 억류 6년 만인 1991년 12월 석방 당시 딸 설롬과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미국대사관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린 테리 앤더슨 기자가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주 자택에서 최근 받은 심장 수술의 부작용으로 숨졌다. 향년 77세.

1947년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1975년 언론계에 입문한 앤더슨 기자는 AP통신의 일본 도쿄특파원이던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 9일간 머물며 5·18을 취재했다. 그는 2020년 출간한 책 ‘AP, 역사의 목격자들’에서 “소식을 듣자마자 광주로 향했다. 10km를 걸어 광주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전남도청 인근 호텔에 묵던 그는 방으로 날아온 총탄을 바닥에 엎드려 가까스로 피하는 등 위험천만한 취재를 이어갔다.

광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본 시체 수를 셌던 그는 “언론인으로서 나의 임무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 즉 ‘사망자 수’를 기록하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기사에서 ‘폭도 3명이 숨졌다’는 계엄군의 발표와 자신이 직접 센 사망자 수 179명을 둘 다 적어 송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앤더슨 기자의 기사가 사료 가치가 높다”며 당시 그가 보낸 기사 원고 텔렉스 13장을 공개했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AP통신 지국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1985년 3월 귀가 중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납치됐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한 대가”라는 게 당시 헤즈볼라의 주장이었다. 약 6년 9개월 만인 1991년 12월 풀려났지만 고문 등으로 평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귀국 후 강연, 방송, 자서전 집필, 자선 사업 등으로 바빴지만 개인사는 순탄치 못했다. 헤즈볼라의 배후 세력으로 자신의 납치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미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 중 2600만 달러(약 360억 원)를 보상금으로 받았지만 모두 날렸고 2009년 파산했다. 3번 결혼하고 이혼했으며 두 딸이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장녀 설롬(39)은 “세상은 아버지를 두고 ‘고통’을 떠올리지만 그가 베푼 선행을 기억해 달라”고 추모했다. 줄리 페이스 AP통신 수석부사장 겸 편집국장은 “그가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보도하는 데 전념했다”고 애도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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