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탄압으로 구호단체 지원 ‘뚝’ 끊긴 아프간 여성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7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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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구호단체 ‘여성 직원 활동 금지’ 여파
아프간 여성 가장 가구 96% 식량난 겪어
국제구호단체, 탈레반에 조치 철회 촉구

지난해 5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부르카를 쓴 여성과 남성들이 한국 구호단체가 배급하는 식료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유엔은 올해 아프간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830만 명이 기근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여성 인권을 억압하고 있는 탈레반 세력은 여성이 구호단체와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을 사실상 막아 둔 상태다. 카불=AP뉴시스.
지난해 5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부르카를 쓴 여성과 남성들이 한국 구호단체가 배급하는 식료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유엔은 올해 아프간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830만 명이 기근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여성 인권을 억압하고 있는 탈레반 세력은 여성이 구호단체와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을 사실상 막아 둔 상태다. 카불=AP뉴시스.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27살의 여성 자밀라는 몇 년 전 남편이 죽은 후 실향민 캠프에서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홀로 네 아이를 키워왔다. 구호단체는 자밀라의 아이들이 홍역, 소아마비 등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게 해줬고, 이들에게 밀가루, 쌀 등 식료품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말 구호단체의 지원이 뚝 끊겼다. 여성이 외부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는 등 여성을 강력하게 억압해온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이 지난달 24일 구호단체에서의 ‘여성 직원’의 활동을 금지하면서 단체와 자밀라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 아프간 여성 가장 가구 96% 식량난 겪는데…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탈레반 세력이 구호단체에서 여성의 활동을 금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지원받을 길이 좁아졌다고 1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2021년 아프간을 재집권한 탈레반은 강한 여성인권 탄압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여성의 공공시설 출입이나 교육을 금지시킨 것은 물론이고, 남자 가족 구성원 없이 홀로 멀리 외출하는 것조차 금지한 상태다. 이 때문에 그동안 현지 여성들은 ‘여성’ 구호단체 요원을 만나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탈레반이 여성 직원의 활동마저 막음으로써 구호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이 눈을 제외하고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전부 가리는 복장인 ‘부르카’를 착용한 채 외출한 모습. 탈레반 세력은 지난해 5월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사실상 의무화했다. 트위터 캡쳐.
아프간NGO조정기구(ACBAR)에 따르면 현지에서 활동하는 여성 활동가는 1만6000명이 넘는다. 국제 인도주의 구호단체인 국제구조위원회(IRC) 아프간 사무소에는 총 8000명의 직원이 있으며 이 중 여성은 3000명(37.5%)이다. 이들은 남성 직원이 직접 도울 수 없는 여성과 여아 1160만 명의 각종 지원사업을 도맡아 왔다. 특히 아프간에선 여성이 가장인 가구의96%가 식량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아프가니스탄 쿤두즈 지역에서 현지 미망인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아온 노르웨이 난민위원회(NRC) 소속 아베다 모사비는 아프간 여성들의 상황이 그야말로 “재앙”이라고 전했다. 모사비는 “지난해 여덟 자녀를 홀로 키우는 아프간 여성이 지참금 2000달러(약 248만 원)를 받고 13세딸을 나이 든 남성에게 조혼시키려고 했는데, 국제구호단체의 식량 지원 사업에 연결해줘 겨우 막을 수 있었다”며 “아프가니스탄에는 이런 집이 수백 가구가 있는데, 앞으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고 통탄했다.
● 유엔 “올해 아프간 2830만 명 기근 겪을 것”
특히 유엔은 올해 아프간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830만 명이 기근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직 겨울이 지나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아프간 여성들이 정치·사회적 탄압과 경제적 위협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국제구호단체는 현지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공급하는 역할도 해왔다. 영국의 구호단체 ‘아프간 에이드’에서 일해온 하비바 악바리는 단체에서 받던 월급 350달러(약 43만 원)로 7남매와 부모를 부양해왔다. 악바리는 “이번 조치는 (우리를) 구걸과 고난의 삶으로 내모는 형벌과 다름 없다”며 “탈레반이 우리를 생매장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13일 IRC는 성명을 내고 “탈레반 정권의 칙령은 아프간 내 인도주의 사업을 잠정 중단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며 탈레반에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IRC는 2021년에도 600만 명 이상의 아프간 사람들을 지원했다”며 “활동 중단으로 매일 수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IRC는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35년간 아프간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진행해왔다.
이청아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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