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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인니 축구장 난동에 174명 사망…최루탄 과잉진압 논란

입력 2022-10-02 21:28업데이트 2022-10-0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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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축구장에서 관중을 구하는 현지 경찰들. 뉴욕타임즈 캡처
인도네시아의 한 축구장에서 1일(현지 시간) 홈팀 경기의 패배에 흥분한 팬들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한 무장 경찰과 충돌한 끝에 대규모 압사 사고가 벌어져 최소 174명이 숨지고 180명이 다쳤다. 1964년 중남미 페루 리마 축구장에서 328명이 숨진 사건 이후 사망자 기준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인명 피해가 많은 참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다. 희생자 중에는 경찰도 포함됐으며 부상자 중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는 1부리그 일정을 1주일간 중단하고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 역시 2일 “향후 축구 경기에 관중 입장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팬 난동→최루탄 진압→관중 출입구 몰려 참사

AP통신 등에 따르면 1일 동부 자바주(州) 말랑리젠시의 칸주루한 경기장에서 홈팀 ‘아르마FC’가 원정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의 경기가 열렸다. 두 팀은 자바 지역의 양대 라이벌이며 이날 경기장에는 이미 수용 인원보다 4000명이나 많은 4만2000명이 입장한 상태였다. 경찰 또한 비상사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었다.

아르마FC는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1999년 이후 23년 만에 최초로 홈경기에서 2대 3으로 패했다. 격분한 아르마FC 열성팬 약 3000명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경기장으로 난입했다.

놀란 페르세바야 선수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나가 경찰의 무장 장갑차 안으로 대피했지만, 천천히 걸어 나오던 아르마FC 선수단과 일부 경찰은 관중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구타당했다. 관중들은 주변의 경찰차도 부쉈다.

결국 무장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 작전을 시작하자 경기장에 난입한 열성팬과 일반 관중들이 모두 놀라 출구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관중들이 서로 밟고 밟히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경기장에서만 최소 34명이 질식사로 숨졌다. 나머지 사망자들은 병원에 이송됐지만 살아나지 못했다. 경찰 또한 2명 숨졌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황급히 뛰는 아버지, 살기 위해 경기장 난간을 기어 올라가는 관중, 그라운드에 방치된 시신 등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담은 영상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불 탄 경찰차들이 뒤집힌 채 경기장 여기 저기 방치된 사진도 공개됐다.

● 최루탄 과잉진압 논란

일각에서는 축구팬 난동에 최루탄까지 쏘며 대응한 경찰의 과격 진압이 참사의 발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 ‘인도네시아 경찰감시단(IPW)’은 2일 페르리 히다야트 말랑 경찰서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소속 운동가 베로니카 코만 씨는 “경찰의 최루탄 남용은 불법이고 고문”이라며 위도도 정권이 이전부터 최루탄을 과도하게 써 왔다고 지적했다. 흥분한 팬들이 경기장으로 물병을 던지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당국이 경기장 내 물병 반입을 금지하는 바람에 관중들이 최루가스를 씻어내지 못해 더 큰 고통을 받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도네시아 축구팬의 과도한 응원 행태 또한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현지 축구팬들이 인도네시아어로 ‘죽을 때까지’를 뜻하는 “삼파이 마티”란 용어를 자주 쓰며 폭력 사태도 빈번하다고 전했다.

역대 축구 관련 참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64년 페루 리마에서는 페루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도쿄올림픽 예선전이 끝난 뒤 관중이 난입해 328명이 숨졌다. 1969년 중남미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이민자 문제로 갈등을 벌이던 중 월드컵 예선전에서 온두라스가 패하자 쌓인 앙금이 폭발해 전쟁으로 이어졌고 약 3000명이 희생됐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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