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관 사고 인근에 러 해군함 목격”…유럽 정보관계자 증언 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9일 21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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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 3곳의 누출 사고 배후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고 당시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 해군 함선들이 목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역시 이미 6월에 독일 등에 “가스관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고가 러시아의 의도적 파괴 공작(사보타주)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밀리고 있는 러시아가 기존 재래식 무기 외에도 해킹, 가짜 뉴스, 사보타주 등을 결합한 소위 ‘하이브리드 전쟁’을 통해 전세를 만회하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공격 주체와 공격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신속한 방어가 어렵고 소셜미디어 등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이 승패를 좌우하는 현대전의 특징을 일컫는 용어다. 가디언에 따르면 에드거스 린케빅스 라트비아 외무장관은 “전쟁이 하이브리드 전쟁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 같다”고 평했다.

● 누출 사고 당시 러 함선 목격

28일(현지 시간) 미국 CNN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의 발트해 해저 구간 3곳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한 26, 27일 양일간 유럽 정보 관계자들이 러시아 해군 함선을 인근 해역에서 목격했다고 보도했다. 덴마크군의 한 소식통 역시 “그간 러시아 함선이 자주 관찰됐다”고 전했다.

주변 해역에 러시아 함선이 있었다고 해서 이번 사고를 러시아 소행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러시아를 의심할만한 정황은 속속 포착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CIA가 6월 독일 등 유럽 주요국에 노르트스트림의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영국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자율주행 수중 차량으로 폭발물을 몰래 가스관 옆에 실어 날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러시아가 최소 몇 달 전 어선 같은 작은 선박에서 수중 차량을 발사해서 가스관 옆에 폭발물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후 특정 주파수를 내는 소음원을 물 속에 넣는 방식으로 폭발 장치를 작동시켜 사고를 일으켰다는 추정이다.

사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웨덴 해안경비대 측은 당초 알려진 3곳이 아닌 4곳의 누출 지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 역시 해저 가스관 4개 중 3개가 영구훼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타게스슈피겔이 28일 전했다. 가스관을 빠르게 수리하지 않는다면 바닷물이 대거 흘러들어 파이프라인이 부식될 수밖에 없지만 사고 지점 접근이 어려워 아직 경위 조사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연합(EU)은 누출로 인해 온실가스인 메탄 방출 또한 급증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따른 환경영향 분석에 착수했다.

● 노르웨이, 석유·가스 시설에 병력 배치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늘어나면서 유럽 각국은 에너지 안보를 속속 강화하고 있다. 유럽 최대 천연가스 공급국인 노르웨이의 요나스 가르 총리는 28일 석유 및 가스 시설에 군을 배치할 것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해상 시설에 대한 모든 공격은 동맹과 같이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고속기동포병로켓체계 ‘하이마스(HIMARS)’ 18대 추가 지원을 포함해 11억 달러(약 1조6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EU도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 70억 유로(약 9조7000억 원) 상당의 수입 제한 등 추가 대러 제재를 추진하기로 했다.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위협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우려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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