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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러, 104년 만에 외채 디폴트…이자 1300억 원 지급 못해”

입력 2022-06-27 14:02업데이트 2022-06-2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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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게티이미지코리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제재 폭탄을 맞은 러시아가 결국 104년 만에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2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날 외화표시 국채 이자 약 1억 달러(약 1300억 원)를 투자자들에게 지급하지 못 했다. 이 국채 이자의 지급일은 원래 지난달 27일이었지만 그 후 30일의 유예 기간이 있어서 이날 디폴트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오후까지 러시아가 국채 이자 지급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외화 표시 채권에 디폴트를 맞은 것은 1918년 볼셰비키 혁명 당시 채무 변제를 거부한 이후 104년 만에 처음이다. 현대에 와서는 1998년 루블화 국채의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선언하며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이번 러시아의 디폴트는 서방의 제재에 따른 사실상의 ‘강제 디폴트’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사례들과 다르다. 올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러시아 재무부, 중앙은행과 금융 거래를 금지하는 한편 러시아가 해외에 보유한 달러화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에 나섰다. 다만 그러면서 채권자들이 러시아로부터 원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5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러시아의 외화 자산을 채무 상환용으로 쓸 수 있게 허용했다. 그러나 이 유예 기간이 끝나면서 러시아는 국채 이자를 지급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국채 이자를 지급할 외화가 충분한 데도 제재 때문에 인위적인 디폴트를 맞게 됐다”고 서방을 맹비난해 왔다. 외화가 바닥나고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면서 생기는 일반적인 디폴트와는 성격이 크게 다른 것이다.

러시아가 이날 이자 지급에 실패했지만 공식적인 디폴트 선언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관례상 신용평가회사가 디폴트 여부를 판정해야 하지만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국채의 신용도를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 러시아 국채를 들고 있는 투자자의 25% 이상이 디폴트 선언을 하고 법원에 이자 지급 소송을 내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 경우 채권자가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역시 서방의 제재로 불가능하다. 결국 투자자들은 디폴트 선언 없이 당분간은 이렇다할 ‘액션’을 취하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자들은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다”면서 “전쟁 상황을 주시하면서 제재가 완화되기를 바라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디폴트는 국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러시아가 이미 제재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는 데다, 러시아의 외화 자산이 해외 각지에 동결돼 있다 뿐이지 제재만 풀리면 이자 상환에 충분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가 지고 있는 외화 부채는 400억 달러로 이중 외국인이 들고 있는 채권은 절반인 200억 달러 안팎이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이보다 훨씬 많은 6400억 달러다.

AP통신은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디폴트가 1998년 모라토리엄 당시의 충격을 몰고 오진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러시아의 디폴트는 미국 유명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으로 이어지며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서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물론 러시아의 디폴트는 서방의 제재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한 러시아 경제를 더 위기에 내몰 것으로 전망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CNN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러시아 경제 규모가 내년에 8~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루블화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인위적으로 떠받쳐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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