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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살인 원한다 했더니 병원 보내, 농담 아닌데…”[사람, 세계]

입력 2022-05-19 03:00업데이트 2022-05-1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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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버펄로 흑인 겨냥 총기난사범
일기에 인종차별-강박 성향 담겨… 두달 전 범행 장소 가 흑인 수 확인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질 여사가 사흘 전 흑인을 대상으로 한 총격 사건이 발생한 뉴욕주 버펄로의 범행 장소 인근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버펄로=AP 뉴시스
“내 인생 최악의 밤은 병원 응급실에서 20시간을 보낸 2021년 5월 28일이었다. 경제학 수업 과제물에서 은퇴한 다음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살인’과 ‘자살’이라고 적었더니 나를 병원으로 보내버렸다. 농담이 아니었는데. 정말 하려는 일인데.”

미국 뉴욕주 북부의 한 백인 밀집 마을에 사는 고교생 페이턴 겐드런(당시 17세)은 2021년 12월 9일 컴퓨터를 켜고 이런 일기를 써내려 갔다. 학교에서 외톨이였고 가족과도 단절된 그는 늘 혼자 집에 돌아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이런 그에게 일기를 쓰며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이나 다름없었다.

17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흘 전 뉴욕주 버펄로의 슈퍼마켓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흑인 10명을 숨지게 한 겐드런의 일기를 입수해 보도했다. 일기에는 그가 음모론, 편집증, 폭력으로 점철된 상황에 빠져드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충격을 더한다. 영국 런던킹스칼리지 급진화국제연구센터(ICSR) 라잔 바스라 박사는 “겐드런은 일기를 통해 자신과 대화하며 인종차별 신념을 증폭시켰다”며 그의 정신세계가 지극히 불안정했다”고 분석했다.

올해 1월 16일 일기에는 “사촌 집에 놀러 갔다.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를 빼고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의 강박증 성향도 갈수록 심해졌다.

올 들어 겐드런은 노골적인 인종차별 옹호, 각종 음모론 등을 담은 글이 다수 올라오는 온라인 사이트 ‘포챈’을 알게 됐다.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겐드런은 포챈에 접속하는 시간이 점점 늘었고 흑인 혐오를 담은 게시물에 갈수록 빠져들었다. 이달 5일 일기에는 “포챈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흑인은 지적, 감정적으로 열등하다’고 알려줬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급기야 흑인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겐드런은 범행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올해 3월 16일 일기에는 이번 범행 장소인 버펄로 톱스슈퍼마켓에 가서 흑인 및 백인 고객의 수, 경비원 배치 등을 살폈다고 적었다. 약 두 달 뒤인 이달 14일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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