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아베딘, 바람둥이 남편을 둔 아내의 동병상련[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1-11-24 14:35수정 2021-11-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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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74)은 미국인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최근 요로결석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간호하느라 별로 외부 활동이 없습니다. 그런 그녀가 열심히 참석하는 곳이 있습니다. 국무장관 시절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후마 아베딘(45)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입니다.

최근 뉴욕에서 열린 후마 아베딘(왼쪽)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오른쪽). 아베딘은 25년 동안 클린턴 전 장관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비서실장 출신이다. 폴리티코

최근 뉴욕에서 ‘후마 아베딘-힐러리 클린턴: 대화’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아베딘의 자서전 ‘양쪽/그리고: 여러 세계에서의 삶(Both/And: A Life in Many Worlds)’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였습니다. 힐러리 전 장관은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 대선후보 등 역동적인 정치 인생을 살아온 자신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보좌했던 아베딘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풀어놨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열린 뒤풀이 파티까지 참석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행사도 아니고 전 비서의 출판기념회에 찬조 출연하는 힐러리 전 장관에 대해 “정성이 뻗쳤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합니다. 그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힐리러-아베딘은 친한 사이입니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아베딘은 친숙한 얼굴입니다. 1996년 힐러리가 퍼스트레이디였을 때 담당 인턴으로 백악관에 발을 들여놓은 뒤 25년 동안 그녀의 ‘바디 우먼(Body Woman)’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나 유명 정치인의 공적, 사적 스케줄을 책임지며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최측근 비서를 “바디 맨” “바디 우먼”이라 부릅니다. 아베딘은 2016년 힐러리 대선 캠페인 부위원장 역할을 마지막으로 힐러리 전 장관과의 공식 관계는 끝났지만 사적 친분은 유지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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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힐러리-아베딘 관계를 단순한 상사와 부하 간 의리가 아니라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컨셉으로 분석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남편의 섹스 스캔들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힐러리 전 장관은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 전 백악관 인턴을 포함한 여러 여성들 간의 성 추문이 터질 때마다 “왜 (이런 바람둥이) 남편을 떠나지 않느냐”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1992년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의 시사 프로그램 ‘60분’ 인터뷰 장면. “왜 바람을 피운 남편을 떠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클린턴 전 장관은 “나는 태미 와이넷의 노래에서처럼 그저 남편 옆에 서 있는 보잘것없는 여자가 아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피플

그 데자뷰(기시감)가 20여년 후 아베딘에게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아베딘의 남편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이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아베딘과 위너는 한 민주당 행사에서 만나 2010년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례로 결혼했습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결혼 다음해인 2011년 위너 전 의원은 ‘섹스팅(Sexting)’이라고 부르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와 자신의 하체 부분을 촬영한 사진을 한 여성에게 트위터로 보내려다 잘못 배달돼 공개 망신을 당했습니다. 아베딘의 자서전에는 “결혼식 전날 우연히 열어본 남편의 e메일 박스에 여성들로부터 온 메시지가 가득해서 놀랐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위너 전 의원은 곧바로 하원의원 직을 사퇴하고 삶을 바로 잡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섹스팅이 2013년, 2016년 두 차례 더 발각됐습니다. 2016년 섹스팅 때 보낸 사진에는 아베딘과의 사이에 낳은 5세 아들이 배경에 찍혀 “제 정신이냐”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위너 전 의원은 15세 미성년 여성에게 성적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돼 2년 가까이 수감됐고, 이후 남아있는 성범죄자 기록 때문에 지금은 정치적 재기는 물론 일반적인 생활도 어렵습니다.

2011년 섹스 스캔들 후 정치적 재기를 모색하던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왼쪽)은 2013년 뉴욕시장 도전을 선언했다. 유세 기간 동안 2차 섹스 스캔들이 터지면서 후보 사퇴 압력이 가중됐지만 위너 전 의원은 아내 후마 아베딘(오른쪽)과 함께 기자회견에 등장해 “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아베딘은 2016년 세 번째 스캔들 후에야 별거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재 이혼 절차가 거의 마무리되는 중입니다. 연이어 남편의 성 추문이 터졌을 때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 그녀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습니다. 2013년 위너 전 의원의 뉴욕시장 선거 유세 동안에 나온 두 번째 섹스 스캔들 때는 클린턴 부부의 ‘60분’ 인터뷰를 연상시키는 부부 기자회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사랑한다” “아이가 우선이다”라고 했습니다.

2016년 아베딘-위너 부부의 세계에 힐러리 전 장관이 매우 극적으로 엮이게 됩니다. 미연방수사국(FBI)은 섹스팅 메시지가 오간 위너 전 의원의 컴퓨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힐러리 전 장관의 공적 업무 내용이 담긴 e메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베딘이 남편과 컴퓨터를 공유하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공식 업무용 컴퓨터 이외의 사적 컴퓨터를 통해 정부 기밀사항이 오가는 것은 위법이기 때문에 FBI는 공식 조사 착수를 발표했습니다. 2016년 대선 을 열흘 앞두고 생긴 일이었습니다. 당시 논란이 됐던 ‘힐러리 e메일 사건’입니다.

FBI는 나흘 만에 “e메일 조사 결과 기밀 사항에 관련된 내용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적 컴퓨터를 통해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재택 근무가 많아지면서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선에서 조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이달 초 미국에서 출간된 후마 아베딘의 자서전. 남편인 위너 전 의원의 섹스 스캔들, 보스였던 힐러리 전 장관과의 관계가 관심을 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전 장관은 명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섹스팅 메시지가 오간 추잡한 컴퓨터를 통해 정부 업무가 처리될 정도로 공사 구분이 안 되고 리더십이 허술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폭주했습니다. FBI 조사는 당시 도덕적 열세 에 놓여있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유세 막판에 터진 초대형 악재에 고전했고, 패배의 쓴맛을 봤습니다. 아베딘의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패배에 많은 요인이 있었지만 FBI 조사가 결정적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유세 비행기에서 FBI 조사 착수 뉴스를 접한 아베딘은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의 컴퓨터를 이용해 정부 업무를 처리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와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아”라고 위로한 것은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클린턴 전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과거의 자신이 그러했듯 아베딘 역시 남편 섹스 스캔들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미국인들은 힐러리-아베딘 관계를 “일심동체(一心同體)” “동업자” “어머니와 딸” 등 다양한 단어로 설명합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나에게는 딸이 1명(첼시 클린턴)있지만, 두 번째 딸이 있다면 그건 후마였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심리학자들은 힐러리-아베딘이 공유하는 감정을 ‘벙커 심리’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기 힘든 일에 처하면 그 상황에서 헤어 나오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안으로 파고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섹스 스캔들을 접한 뒤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죠. 힐러리는 정치적 야망 때문에, 아베딘은 무슬림 가정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그 동병상련의 정이 정치적인 굴곡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이들을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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