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밀착 호주 때린 中… ‘철광석 방패’ 못뚫고 전력난 자충수[글로벌 포커스]

이은택 기자 , 김수현 기자 입력 2021-10-02 03:00수정 2021-10-0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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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경제보복 맞서는 호주
동반자서 “신발 밑의 껌”으로… ‘오커스’ 출범으로 갈등 새 국면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가 중국과 ‘일대일로’ 계약을 맺은 것을 반대하는 빅토리아 주민 200여 명이 2019년 12월 주의회 계단에서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트위터
지난달 15일 호주가 미국, 영국과의 앵글로색슨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최근 몇 년간 이어졌던 중국과 호주의 갈등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철광석, 와인 등 호주산 상품의 수입을 줄줄이 중단하며 강도 높은 무역 제재를 가했다. ‘중국 정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후시진(胡錫進) 관영 환추시보 편집장 또한 지난해 4월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돌로 문질러줘야 한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오커스로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된 호주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중국 또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시사전문지 디애틀랜틱은 양국 갈등을 두고 “중국은 힘의 한계를 발견했다. 세계를 바꾸려 하지만 작은 주변국조차 바꾸지 못했다”고 평했다. 상호 의존적인 세계 무역 공급망, 복잡한 외교안보 네트워크가 작은 나라(호주)도 큰 나라(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했다는 의미다.

○ 中 과거엔 ‘좋은 동반자’ vs 현재 ‘씹던 껌’

호주와 중국은 1972년 수교했다. 미중 수교(1979년)보다 7년 빨랐다. 이를 통해 호주는 세계 최대 수출 시장을 얻었고, 중국은 영연방의 일원이며 역사적으로 영국 미국과 친밀한 관계인 호주와의 협력을 강화할 기회를 확보했다.

7년 전만 해도 양국 관계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10월 고프 휘틀럼 전 호주 총리가 별세했을 때 “중국인은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휘틀럼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동맹인 미국과 영국의 반대에도 호주 총리 최초로 중국을 방문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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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
시 주석은 한 달 후 호주를 직접 찾아 연방의회 연단에서 “역사적인 원한도, 근본적인 이익 충돌도 없는 중국과 호주야말로 진짜 동반자”라고 선언하며 호주-중국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알렸다. 호주는 중국에 아편전쟁, 홍콩 할양 등 굴욕을 안긴 영국도,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도 아니라는 의미다. 당시 시 주석은 중국 최고지도자 최초로 뉴사우스웨일스 등 호주 6개 주를 모두 방문했다.

스콧 모리슨 총리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고 다음 해 8월 현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집권하면서 양국 갈등이 격화했다. 2018년 8월 트럼프 행정부는 미 국방부 등 정부기관에서 중국 최대 통신장비기업 화웨이의 통신장비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가 중국 정보기관의 역할을 한다고 봤다. 인민해방군 출신의 런정페이(任正非)가 창업한 화웨이가 각국 통신망에 ‘백도어’(정보를 빼돌리는 장치)를 심어 기밀을 빼낸 뒤 중국 공산당에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호주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화웨이 때리기’에 동참하며 화웨이를 5세대(5G) 이동통신망 사업 입찰에서 배제했다.

중국은 분노했다. 중국은 2019년 3월 호주산 석탄을 시작으로 보리, 쇠고기, 와인, 바닷가재 등 주요 상품에 줄줄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특히 와인에는 최대 218%의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은 호주로부터 2511억 호주달러(약 215조3157억 원)의 물품과 서비스를 사들였다. 호주 전체 수출의 43%다. 2위 미국(808억 호주달러), 3위 일본(791억 호주달러)보다 훨씬 많다. 중국 시장을 잃으면 호주 수출이 반 토막 난다. ‘미국 편에 서면 돈으로 보복한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지난해 11월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호주 군인이 웃으며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을 베는 모습을 묘사한 합성사진을 올리고 “호주 군인이 아프간에서 저지른 행각에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당시 호주는 과거 아프간에 파병된 자국 특수부대원이 민간인 등 39명을 불법 살해했다고 발표하며 전면 재조사를 약속했다. 중국의 조롱에 격분한 모리슨 총리는 “혐오스럽고 터무니없다”며 사진 삭제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거부했다. 같은 달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은 호주 취재진에 5G 사업에서 화웨이 배제, 홍콩 인권문제 개입 등 ‘호주의 반중 정책 14가지’란 문서를 배포하며 ‘이런 행동은 하지 말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보냈다.

○ 일대일로 파기한 호주, ‘中은 침략자’ 맞불


호주도 반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을 때부터 중국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며 기원 조사를 주장했다. 모리슨 총리 또한 지난해 4월 ‘친중 성향의 세계보건기구(WHO)가 아닌 중국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며 미국을 거들었다. 석 달 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2700억 호주달러(약 224조 원)를 들여 첨단 무기를 도입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올 4월에는 남동부 빅토리아주가 2018, 2019년 중국과 맺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이 안보와 국익을 해친다며 전면 백지화했다. 호주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외국의 계약을 무효화한 것은 처음이다.

5월 호주 국가안보위원회(NSC)는 2015년 북부 다윈항이 중국 기업과 맺은 ‘99년간’ 장기 임대차 계약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윈항은 중국이 중동산 석유를 들여오는 말레이시아 남부 말라카해협에서 남동쪽으로 약 3700km 떨어져 있으며 뱃길로 접근이 용이하다. 중국의 ‘에너지 생명줄’ 같은 이 해협을 미국, 영국 해군이 장악해 왔다. 유사시 미국이 말라카를 틀어막으면 중국의 석유 공급이 끊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은 이 안보 위협을 ‘말라카 딜레마’라고 불렀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역대 중국 지도자의 숙원이었다. 최근에서야 중국이 다윈항을 거점 삼아 장기적으로 말라카의 미 해군을 견제하려 했는데 호주가 엎은 셈이다.

서방은 오래전부터 일대일로를 두고 ‘인프라 투자를 앞세워 전 세계를 중국의 경제식민지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해 왔다. 파키스탄 과다르항, 스리랑카 함반토타항 등 저개발국 주요 항만에 투자한 것도 이런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모리슨 총리는 지난달 27일 미 CBS 인터뷰에서 시 주석과 1년 넘게 대화가 없었으며 중국 측이 호주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브론윈 비숍 전 호주 하원의장은 3월 “중국은 침략자(aggressor)”라고 일갈했다. 호주 언론도 중국에 날을 세웠다. 앤드루 볼트 호주 스카이뉴스 앵커는 지난달 27일 “중국은 깡패집단(gangsters)이 운영하는 나라”라고 비난했다.

○ 中자본·유학생 급증, 반중 여론 부추겨


호주가 중국을 버리고 미국의 편에 선 것은 미국과 오커스,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5개국 동맹체) 등을 함께한다는 점, 인권 및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도 있지만 호주 내부의 반중 여론 또한 적지 않게 작용했다.

2014년경부터 중국인은 호주 부동산을 대거 매입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만 중국인이 사들인 호주 부동산이 150억 호주달러(약 12조8600억 원)다. 이후 시드니 등 주요 도시 집값이 급등하자 호주인의 분노는 중국을 향했다.

2019년 7월 퀸즐랜드대에서는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평화 시위를 벌였던 호주 학생이 2년 정학 처분을 당했다. 반면 시위대를 폭행한 중국 유학생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중국 유학생은 호주 학생보다 3, 4배 비싼 등록금을 낸다. 유서 깊은 대학조차 중국 자본에 종속돼 벌어진 일이라는 자조가 일었다.

지난해 6월 호주 로위연구소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호주 국민의 94.4%는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을 줄이고 대체 시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답했다. 중국이 ‘경제협력 대상’이라는 응답은 2018년 81%였지만 지난해 15%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중국이 ‘안보위협 국가’란 답도 12%에서 41%로 증가했다.

○ 고품질 호주산 철광석이 버팀목


중국이 유독 호주를 때리는 이유에도 관심이 쏠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베이징 지국장을 지낸 리처드 맥그리거 로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어도 미국의 동맹은 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중국이 호주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지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호주를 공격해 미국과 대리전을 벌인다는 의미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다. 호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4위에 불과하다. 인구(1위 vs 55위)와 군사력(3위 vs 19위)도 차이 난다. 미 CNN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의 국방비는 270억 달러(약 31조9950억 원), 중국은 2520억 달러(약 298조6200억 원)다.


그래도 호주가 버티는 것은 ‘믿는 구석’ 때문이다. 호주는 세계 최대 철광석 수출국이고 대중 1위 수출 품목도 철광석이다. 호주산 철광석은 고품질이라 중국도 대체품을 찾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호주산 철광석이 없다면 중국 제철산업이 문을 닫아야 할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은 호주에 무역 제재를 가했지만 타격을 주지 못했다. 철광석 수입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4월 SCMP 또한 ‘철광석 가격 급등으로 호주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대부분 만회했다”고 분석했다.

호주는 세계 제1의 석탄 수출국이기도 하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중국 전력난의 주요 원인도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이었다. 중국은 연간 발전용 석탄의 5%(약 1억5000t)가량을 호주에서 수입한다. 이것이 막히자 전력 공급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호주 역시 중국과 대치하며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호주산 바닷가재의 95%를 소비한다. 적지 않은 호주 어민 및 농가 또한 중국의 무역 보복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호주 경제학자 솔 에슬레이크는 “호주는 중국을 대상으로 무역 흑자를 내는 몇 안 되는 국가”라며 “무역 전쟁이 길어지면 불리한 쪽은 호주”라고 우려했다.

미 외교싱크탱크 퍼스 US아시아센터의 제프리 윌슨 연구원은 디애틀랜틱에 호주를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고 평했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유럽 광부들은 갱도의 유독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들여보냈다. 마찬가지로 호주를 통해 힘을 앞세운 ‘늑대전사(戰狼) 외교’를 펼치는 중국이 전 세계에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프 라비 전 중국 주재 호주대사는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인 중국은 나쁜 행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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